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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2660 파수부편 한국(韓國)
토제(土製)
연질(軟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01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워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연질 무문토기의 파수부편(把手部片)으로 색조는 황갈색이다. 단면은 원형이고, 끄트머리는 둥글게 처리하였다. 기벽부착의 성형시에 남은 손누름 자국이 잔존하며, 기면의 중앙에는 길이 2.1㎝, 폭 0.2∼0.4㎝의 구멍이 관통하나 맞은편과 규격은 일정하지 않다. 바탕흙은 점토질에 비교적 굵은 사립을 함유하였으며 석영과 소량의 운모를 보강제로 사용하였다. 소성은 양호한 편이다.
2659 백자제기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제례(祭禮) 제기(祭器) 종교신앙(宗敎信仰) 유교(儒敎) 석전제(釋奠祭) 제기(祭器)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34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제기는 푸른 기운이 도는 백색의 제기편을 구연부와 몸통일부가 결실되었다. 굽에 모래받침의 흔적이 있으며 구연부에 황색이 부분적으로 보인다. 내면에는 이물질이 보이나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2658 백자대접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32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대접은 몸통과 구연부 대부분 결실되었으며 회색의 색조를 띤다. 기벽은 두껑운 편이며 표면에 이물질이 많으나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구연부는 직립한다.
2657 백자발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발(鉢)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31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발은 몸통과 구연부 일부가 결실되었으며 유회색위 맑은 색조를 띤다. 굽접지면과 내면바닥에 모래받침의 흔적이 완연하다. 구연은 외반하며 표면에 이물질이 보이나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2656 백자대접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30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대접은 몸통부분과 구연부가 결실되었으며 유백색의 밝은 색조를 띤다. 굽접지면과 내면 바닥에 모래받침의 흔적이 완연하다. 구연부는 외반하며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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