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에 걸쳐 무기로 쓰였던 청동제 화살촉이다.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의 것은 대부분 유경양익촉(有莖兩翼鏃)으로 황해도 사리원시 상매리(上梅里) 돌널무덤(石棺墓),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리(茂溪里), 전남 승주 죽산리(竹山里) 고인돌(支石墓)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고, 中國 遼寧省 西豊縣 誠信村에서는 거푸집(鎔范)이 출토되었는데, 4점이 하나의 거푸집에 틍리 만들어져 있다.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細竹里)와 강원도 간성군 거진에서 발견된 거푸집은 단면 삼각형의 것으로 초기철기시대 혹은 원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로는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龍淵洞), 평양의 부조예군묘(夫租穢君墓), 함경남도 영흥 소라리 등지의 예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대부분의 화살촉은 꼬다리를 가진 유경촉(有莖鏃)으로 화살촉 몸통의 단면 모양에 따라 크게 마름모꼴과 삼각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몸통 아래 끝 양쪽이 날개처럼 벌어진 양익식(兩翼式)이다. 이 밖에 강원도 강릉 포남동(浦南洞)의 예와 같이 단면이 편평팔각형(扁平八角形)인 것과 함남 영흥 소라리(所羅里)처럼 뿌리가 없이 촉신(鏃身)에 나 있는 홈에 살대를 끼우는 형식도 있다.
1679
동화살촉(銅鏃)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군사(軍事) 근력무기(筋力武器) 궁시(弓矢) 촉(鏃)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002 / 000
상세설명
[정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에 걸쳐 무기로 쓰였던 청동제 화살촉이다.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의 것은 대부분 유경양익촉(有莖兩翼鏃)으로 황해도 사리원시 상매리(上梅里) 돌널무덤(石棺墓),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리(茂溪里), 전남 승주 죽산리(竹山里) 고인돌(支石墓)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고, 中國 遼寧省 西豊縣 誠信村에서는 거푸집(鎔范)이 출토되었는데, 4점이 하나의 거푸집에 틍리 만들어져 있다.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細竹里)와 강원도 간성군 거진에서 발견된 거푸집은 단면 삼각형의 것으로 초기철기시대 혹은 원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로는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龍淵洞), 평양의 부조예군묘(夫租穢君墓), 함경남도 영흥 소라리 등지의 예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대부분의 화살촉은 꼬다리를 가진 유경촉(有莖鏃)으로 화살촉 몸통의 단면 모양에 따라 크게 마름모꼴과 삼각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몸통 아래 끝 양쪽이 날개처럼 벌어진 양익식(兩翼式)이다. 이 밖에 강원도 강릉 포남동(浦南洞)의 예와 같이 단면이 편평팔각형(扁平八角形)인 것과 함남 영흥 소라리(所羅里)처럼 뿌리가 없이 촉신(鏃身)에 나 있는 홈에 살대를 끼우는 형식도 있다.
1678
동화살촉(銅鏃)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군사(軍事) 근력무기(筋力武器) 궁시(弓矢) 촉(鏃)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001 / 000
상세설명
[정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에 걸쳐 무기로 쓰였던 청동제 화살촉이다.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의 것은 대부분 유경양익촉(有莖兩翼鏃)으로 황해도 사리원시 상매리(上梅里) 돌널무덤(石棺墓),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리(茂溪里), 전남 승주 죽산리(竹山里) 고인돌(支石墓)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고, 中國 遼寧省 西豊縣 誠信村에서는 거푸집(鎔范)이 출토되었는데, 4점이 하나의 거푸집에 틍리 만들어져 있다.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細竹里)와 강원도 간성군 거진에서 발견된 거푸집은 단면 삼각형의 것으로 초기철기시대 혹은 원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로는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龍淵洞), 평양의 부조예군묘(夫租穢君墓), 함경남도 영흥 소라리 등지의 예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대부분의 화살촉은 꼬다리를 가진 유경촉(有莖鏃)으로 화살촉 몸통의 단면 모양에 따라 크게 마름모꼴과 삼각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몸통 아래 끝 양쪽이 날개처럼 벌어진 양익식(兩翼式)이다. 이 밖에 강원도 강릉 포남동(浦南洞)의 예와 같이 단면이 편평팔각형(扁平八角形)인 것과 함남 영흥 소라리(所羅里)처럼 뿌리가 없이 촉신(鏃身)에 나 있는 홈에 살대를 끼우는 형식도 있다.
1677
동화살촉(銅鏃)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군사(軍事) 근력무기(筋力武器) 궁시(弓矢) 촉(鏃)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000 / 000
상세설명
[정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에 걸쳐 무기로 쓰였던 청동제 화살촉이다.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의 것은 대부분 유경양익촉(有莖兩翼鏃)으로 황해도 사리원시 상매리(上梅里) 돌널무덤(石棺墓),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리(茂溪里), 전남 승주 죽산리(竹山里) 고인돌(支石墓)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고, 中國 遼寧省 西豊縣 誠信村에서는 거푸집(鎔范)이 출토되었는데, 4점이 하나의 거푸집에 틍리 만들어져 있다.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細竹里)와 강원도 간성군 거진에서 발견된 거푸집은 단면 삼각형의 것으로 초기철기시대 혹은 원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로는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龍淵洞), 평양의 부조예군묘(夫租穢君墓), 함경남도 영흥 소라리 등지의 예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대부분의 화살촉은 꼬다리를 가진 유경촉(有莖鏃)으로 화살촉 몸통의 단면 모양에 따라 크게 마름모꼴과 삼각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몸통 아래 끝 양쪽이 날개처럼 벌어진 양익식(兩翼式)이다. 이 밖에 강원도 강릉 포남동(浦南洞)의 예와 같이 단면이 편평팔각형(扁平八角形)인 것과 함남 영흥 소라리(所羅里)처럼 뿌리가 없이 촉신(鏃身)에 나 있는 홈에 살대를 끼우는 형식도 있다.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핬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제기는 제사에 쓰이는 그릇으로 제사에 쓰이는 그릇은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그릇과는 달리 만들어져 있다. 편을 담은 편틀은 네모로 크게 만들어져 쓰지 않을 때는 여러 개를 포개어 간수할 수있다. 그리고 접시류는 둥근 모양에 밑으로 높은 받침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기에는 목기(木器)가 많고 유기나 사기도 있으며, 크고 눞은 제상과 함께 별도로 보관했다가 제사 때에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구연(口緣)은 외반되어 둥글게 말리었으며, 깊이가 비교적 깊고, 내저(內底)가 둥근 곡면(曲面)을 이루는 동체(胴體)를 지녔다. 접시(楪匙)를 받치는 굽다리는 팔각(八角)으로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나팔 형태로 벌어졌다. 유색(釉色)은 담청(淡靑)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며,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