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문방사우 중 필묵(筆墨)을 보관하는 가구.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표준치수는 높이 16∼30㎝, 앞폭 32∼42㎝, 옆폭 20∼30㎝이며. 기본형태는 장방형으로 2단을 만들며, 하단은 평면의 널이 4각(四脚)을 끼우고 사방이 트인 시원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상단은 뚜껑 1개 혹은 2개를 덮게 하고 그 내부에 벼루를 보관한다. 경우에 따라 서랍이 하나 있어 먹과 붓을 넣게 되어 있다. 연상은 사랑방 보료 앞에 놓고 서안과 더불어 애용되고 있다. 상단에 뚜껑이 없이 벼루를 올려놓고 사용하는 연상도 있는데 이는 연대(硯臺)라 하며, 상단 주위에는 벼루가 노출되고 소반의 전과 같이 얕은 변이 아름답게 둘려 있다. 또, 해주반(海州盤)과 같이 네 다리 없이 양측에 판각을 만들어 투각장식한 형태도 있으며, 문갑이나 서안의 높이와 비슷하게 하여 문갑과 서안을 겸용하게 한 연상도 있다. 재료로는 은행나무·소나무·먹감나무가 가장 많이 쓰였으며, 중국의 화류목(樺榴木) 투각장식의 연상과 나전칠기 연상 등은 매우 화려한 고급품이 된다. 그리고 고귀한 선비의 품격을 높여 주는 죽제 연상도 많다. 재료를 더 세분하면 서랍 부분에는 오동나무를 많이 썼고, 외부의 판재는 결이 고운 은행나무나 먹감나무, 기타 재목에 옻칠을 곱게 한다. 서랍의 무쇠고리 외에 금구장식은 거의 없으며, 하단에 풍혈장식(風穴裝飾 : 가장자리를 돌아가면 잘게 새겨 붙이는 꾸밈새)이 보인다. 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연상에는 뚜껑과 서랍면에 모란·십장생·운학(雲鶴) 등의 돋을새김장식이 있는 것이 많고 대체로 나뭇결 무늬의 소박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판의 연결은 연귀짜임(귀끝을 모지게 엇벤 짜임)이 주가 되며 대나무못을 썼고, 뚜껑의 변두리는 통판도 있지만 문갑 등의 문판과 같이 4면에 문변자(門邊子 : 문짝의 좌우상하에 이어 댄 테두리나무)를 만들어 복판을 골재에 끼워 맞추는 턱솔짜임으로 되어 있다. 이 연상은 2단으로 구분되는데, 상단은 뚜껑 2개를 덮어 벼루 등을 수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하단은 서랍형식으로 만들어져 기물은 수납하게 하였고 서랍 앞편에 둥근손잡이(擧金) 1개가 부착되어 있다.
1664
3층농(三層籠)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가구(家具) 농(籠)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949 / 000
상세설명
[정의]
의류 및 기타 기물(器物)을 보관하는 나무상자.
[개념]
비(扮)·협(練)·광(堅) 등의 죽기(竹器)를 의미하였던 광주리에서 나온 말이다. 초기에는 뚜껑이 위에 있다가 점점 상자 앞면에 문을 달아 옷을 넣는 데 편리하게 하여 사용하다가 이를 포개어서 옷장으로 썼던 것 같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원래 농에는 개판(蓋板 : 맨 위에 댄 나무판)이 없는 것이 장(欌)과 다른 점이지만, 후에는 농에도 개판 혹은 다리부분인 마대(馬臺)를 붙여 이를 '개판농' 혹은 '마대농'이라고 불렀다. 또한 서민주택에서는 상자의 안팎에 종이를 바른 함롱(函籠)을 사용하였는데, 바닥에 놓고 썼기 때문에 그와같이 불려졌다. 구조는 널과 널로 접합된 것이 대부분이며, 그 짜임새는 한쪽 널에 촉을 만들고 다른쪽 널에 구멍을 뚫어 맞추는 촉짜임을 썼으며, 모서리는 각 이음새마다 고춧잎모양 혹은 기타 감잡이(양쪽으로 걸쳐 박는 쇳조각) 주석장식을 달아 견고하게 하였다. 또 문판 아래와 양쪽 널에 큰 달형 무쇠들쇠가 하나씩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후기에는 장과 같이 앞면에 쇠시리장식을 하여 미름칸 및 쥐벽칸을 나누었고, 내부는 층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외형은 한층으로 된 농도 만들어졌다. 농의 재료는 가볍고 좀이 안 스는 오동나무가 애용되었으며, 안방용인만큼 나뭇결이 아름다운 먹감나무·느티나무를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나전(螺鈿)이라든가 지롱(紙籠 : 초화문양을 그려 기름을 바른 것)·죽장롱(竹欌籠) 등도 애용되었다. 이 3층농은 천판(天板)과 양단이 돌출된 개판농으로, 둥근형(圓形)경첩과 화형(花形)귀장으로 장식되었고, 1층 상단에 5개, 3층 상단 3개의 서랍을 각각 개설하고 있다. 각 서랍의 들쇠(擧金)는 활 모양이다.
1663
청자접시(靑磁楪匙)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4947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모양을 만들고, 철분이 소량 함유된 장석질의 유약(靑磁釉)을 입혀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접시는 입술 부분이 밖으로 벌어져 전을 이루고 있으며,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소형의 접시이다. 내외면(內外面) 모두 무문(無文)으로,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녹청색을 띠는 청자유(靑磁釉)가 시유되었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빙렬(氷裂)이 나있다. 바닥은 평저(平底)이며, 세 곳에 내화토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내저면(內底面) 세 곳에 내화토를 받치고 포개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1662
청자잔(靑磁盞)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잔(盞)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4946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모양을 만들고, 철분이 소량 함유된 장석질의 유약(靑磁釉)을 입혀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잔은 구연부(口緣部)는 내만되었고, 동부(胴部)는 완만하게 팽배한 잔(盞)이다. 내외면(內外面) 모두 무문(無文)으로,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녹갈색을 띠는 청자유(靑磁釉)가 전면에 시유되었으나, 미세한 빙렬(氷裂)이 나있다. 내저면(內底面)에 모래 부스러기가 묻어있고, 유(釉)가 일부 박리(剝離) 되었다. 굽은 다리굽으로, 굽다리 바닥의 네 곳에 내화토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구연(口緣)의 일부가 파손되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1661
청자음각연판문대접 (靑磁陰刻蓮瓣文大楪)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4945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청자음각은 그릇의 표면에 음각으로 가는 선무늬를 새긴 것으로 그 위에 유약을 입혀서 구원내기 때문에 음각선을 나타내려면 유약이 투명하게 되도록 완전히 녹일 수 있는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음각되는 무늬는 연화, 연화당초, 모란, 국화, 국화당초, 파도문 등이며,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걸쳐 널리 사용된 기법이다. 이 청자대접은 약간 내만된 구연부(口緣部)와 비교적 좁고 높은 굽을 가진 대접(大楪)이다. 내면(內面) 중앙(中央)에 내저원각(內底圓刻)이 있으며, 외측면(外側面)에는 중연판문(重蓮瓣文)이 음각(陰刻)되었다. 회청색을 띠는 청자유(靑磁釉)가 굽을 제외한 전면에 시유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유(釉)가 몰려있다. 빙렬(氷裂)이 나있고, 부분적으로 유(釉)가 변색되어 있다. 굽은 다리굽으로, 굽 안바닥의 세 곳에 내화토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구연(口緣)의 일부가 파손되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