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반찬이나 과일 등을 담는 얇고 납작한 그릇.
[내용]
비교적 편편한 모양의 것이 일반적인데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기에서 출토되고 있는 고배(高杯)가 오늘날의 접시의 조형(祖型)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양요리용 접시를 접시라고 지칭하지만 그전에는 가제(家祭)에서 제물을 괴는 고배형 그릇을 모두 접시라 칭하였다. 즉, 뚜껑이 없이 편편한 식기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상고시대의 고배형 그릇은 시대에 따라 굽이 없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든 접시가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백자 등이 있었다. 현재에는 사기나 유리·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것이 사용되고 있다.
1499
놋접시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86 / 000
상세설명
[정의]
반찬이나 과일 등을 담는 얇고 납작한 그릇.
[내용]
비교적 편편한 모양의 것이 일반적인데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기에서 출토되고 있는 고배(高杯)가 오늘날의 접시의 조형(祖型)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양요리용 접시를 접시라고 지칭하지만 그전에는 가제(家祭)에서 제물을 괴는 고배형 그릇을 모두 접시라 칭하였다. 즉, 뚜껑이 없이 편편한 식기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상고시대의 고배형 그릇은 시대에 따라 굽이 없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든 접시가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백자 등이 있었다. 현재에는 사기나 유리·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것이 사용되고 있다.
1498
놋접시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85 / 000
상세설명
[정의]
반찬이나 과일 등을 담는 얇고 납작한 그릇.
[내용]
비교적 편편한 모양의 것이 일반적인데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기에서 출토되고 있는 고배(高杯)가 오늘날의 접시의 조형(祖型)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양요리용 접시를 접시라고 지칭하지만 그전에는 가제(家祭)에서 제물을 괴는 고배형 그릇을 모두 접시라 칭하였다. 즉, 뚜껑이 없이 편편한 식기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상고시대의 고배형 그릇은 시대에 따라 굽이 없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든 접시가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백자 등이 있었다. 현재에는 사기나 유리·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것이 사용되고 있다.
1497
호족반(虎足盤)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반상(盤床) 소반(小盤)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82 / 000
상세설명
[정의]
식기를 받치는 작은 규모의 상.
[개설]
평평한 반면(盤面)의 통판 널과 여기에 연결되는 다리로 이루어진다. 반(盤) 아래에는 여러 가지 조각이나 문양으로 장식한 난간이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리를 견고하게 하여 주는 중대(中帶)와 족대(足臺)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동하기 편리한 소형 상이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 유교이념인 남녀유별·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상으로 겸상보다는 독상이 주로 쓰였으며, 공간적으로도 부엌과 방이 멀고 규모가 작으면서 좌식생활(坐式生活)을 하는 한식 온돌방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소반의 종류는 산지·형태·용도에 따라 60여종으로 분류되며 명칭과 구조가 다르다. 각 지역은 그 지방 특유의 수목과 생활양식에 따라 지방색을 띠며, 그중 특색이 두드러지는 것이 통영반(統營盤)·나주반(羅州盤)·해주반(海州盤)으로 제작·기교면에서 뛰어나다. 반면의 형태는 8각·12각·장방형·4방형·원형·반월형(半月形)·연엽형(蓮葉形)·화형(花形) 등으로 분류되며, 다리는 모양에 따라 구족반(狗足盤)·호족반(虎足盤)·죽절반(竹節盤)·단각반(單脚盤) 등으로 불린다. 경상도는 죽절형, 전라도는 호족형, 강원도·경기도는 구족형이 주로 나타나고 있다. 쓰임새에 따라서는 식반(食盤)·주안반(酒案盤)·공고상(公故床)·제상(祭床)·교자상(交子床)·대궐반(大闕盤)·돌상[百玩盤]·약반(藥盤)·춘반(春盤)·과반(果盤) 등으로 나누어진다. 재료는 은행나무·호두나무·가래나무·오동나무·피나무·느티나무 등이 반면에 사용되었고, 다리에는 소나무·단풍나무·버드나무 등이 쓰였다. 표면의 칠은 생칠(生漆)·주칠(朱漆)·흑칠(黑漆)과 일반 식물성 기름칠을 하여 소반이 트거나 흠이 생기는 것을 막고 방수가 되게 하였다. 주칠은 혼례용과 궁중용으로 쓰였고, 흑칠은 제사에 사용되었다. 색깔은 황토분·석간주(石間蘚 : 산화철을 많이 포함한 붉은 빛의 흙)·치자 등으로 입히며, 좀더 진한 색을 내기 위해 먹물이나 검은 흙을 섞어 바르기도 하였다. 화려하게 자개를 박아 장식한 것도 있다. 이 소반은 다리가 호랑이의 다리 형태를 하고 있는 소반으로, 표준치수 높이 28∼38㎝, 지름 35∼38㎝이다. 반면(盤面)은 충주의 구족반(狗足盤)과 같으나 그 다리의 형태만 다르다. 즉, 호랑이의 다리모양을 하여 굽은 선이 많고 조각장식 등으로 위용을 보여주어, 대궐용 수라상이나 궁내 제례용 소반, 또는 상류가정의 의례용 소반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구조는 반(盤) 바로 밑에 운각(雲脚 : 길죽한 삼각형의 널조각)이 있고 호족형 다리는 이 운각을 물고 반을 받치게 되어 있어 전라도 나주반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호족형 다리는 대체로 족견(足肩)에 두툼한 만곡(彎曲)을 가지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가늘어지며, 밖으로 약간 벌어지면서 반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리고 다리 끝부분에서 버선코와 같이 위로 살짝 치켜올리면서 두개의 족대 위에 안정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호족은 조각 없이 미끈한 나뭇결로만 그 형태를 살려 민속적인 소박미를 나타낸 것도 있고, 죽절(竹節)과 당초문(唐草文) 조각의 풍혈(風穴)을 곁들여 위엄과 화사함을 동시에 나타내도록 한 것도 있다. 주재료는 은행나무·느티나무 등이며, 궁궐용은 주칠(朱漆)을 하였고 궁중의례용으로는 흑칠(黑漆), 민간용으로는 생칠(生漆), 소형의 주안상으로는 나전흑칠(螺鈿黑漆) 등의 유물이 보인다.
1496
필낭(筆囊)
한국(韓國)
지(紙)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문방구(文房具) 필낭(筆囊)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80 / 000
상세설명
[정의]
붓을 넣어 차고 다니는 주머니이다.
[역사]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유사》 경덕왕조(景德王條)에 "왕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항상 부녀(婦女)의 행동을 좋아하여 비단주머니를 즐겨 차고 다녔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 여인들이 주머니를 많이 찬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 귀가(貴家)의 부녀자들은…중략…감람륵건(橄欖勒巾)에 채조금탁(采條金鐸)을 달고 금향낭(錦香囊)을 찼는데…"라고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도 주머니를 애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것으로는 후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는데 건기(件記)인 낭발기(囊撥記) 등에 십장생줌치·오복꽃광주리낭·오방낭자·십장생자낭·수(繡)낭·고목수줌치·오방염낭·황룡자낭·봉자낭·부금낭(付金囊)·자라줌치 등 많은 종류가 있었다.
[내용]
주머니는 조그만 소지품·돈 등을 넣고 입술에 주름을 잡아 졸라매어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장신구로 비단 헝겊으로 만들어 수를 놓거나 금박을 박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지녔다. 특히 한복에는 조끼를 제외하고는 물건을 넣을 만한 호주머니가 없어 실용적인 면에서 더욱 필요하였다. 임금은 용무늬의 황룡자낭, 왕비·공주·옹주는 봉황무늬의 봉자낭을 지녔다. 부금낭은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는 주머니이고, 오방낭(五方囊)은 청·황·적·백·흑의 5색 비단을 모아서 만든 5행론을 상징하는 것이며, 수(繡)주머니인 십장생줌치는 매사에 길상(吉祥)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주머니이다. 궁중에서는 가례(嘉禮) 때나 정월 첫 해일(亥日)에 대내(大內)와 왕비의 친정, 기타 종친(宗親)들에게 염낭이나 줌치를 보냈다. 비록 조그마한 물건이지만 손이 많이 가고 아기자기하며, 부적과 같은 뜻을 지녔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무척 귀중하게 여긴 선물이었다. 주머니 속에는 황두(黃豆)를 볶아 홍지(紅紙)에 싸서 넣어 보냈는데 이것을 해일(亥日)에 차면 1년 내내 귀신을 물리치고 만복이 온다는 민속에서였다. 평민층에서도 돌잔치·환갑잔치에 주머니를 선물하는 것이 통례였고, 새댁이 첫 근친을 갔다 시집으로 돌아오면 직접 만든 효도주머니를 시집 어른들에게 주었는데 이것을 복주머니라 하였다. 실용과 미를 겸한 장신구인 주머니는 형태·장식·용도·입술을 접는 방법과 소재에 따라 명칭이 각각 다르다. 형태는 크게 나누어 모난 것(귀주머니 또는 줌치)과 둥근 것(두루주머니 또는 염낭)이고, 장식에 따라서 금박주머니·수주머니 등이 있으며, 용도별로는 향낭·약낭·필낭·수저집·안경집·쌈지·도장주머니 등이 있다. 민간에서 쓴 귀주머니는 세모주름을 잡았고, 궁중의 것은 육모주름을 잡았다. 이 주머니는 붓을 넣어 차고 다니는 필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