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목재·종이·천·가죽·쇠 등에 구멍을 뚫기 위한 연장.
[내용]
나무, 종이, 천, 가죽, 쇠 등에 구멍을 뜷기 위한 연장이다. 쇠로 된 날과 슴베에 나무 자루를 달아 손으로 쥐고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날의 자름면 모양에 따라 둥근형, 네모형 등이 있다. 돌려서 뚫는 도래 송곳, 두 손바닥으로 비벼서 쓰는 비비송곳, 활시위를 송곳 자루 중간에 돌려 앞뒤로 회전시켜 뚫는 활비비가 있다. 활시위를 송곳자루 중간에 한 바퀴 돌려 앞뒤로 당겨 회전시킨다. 옛말로는 '鑽弓(찬궁)'이라 쓰고 '활바뷔'라 하였다. 이 송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활비비이다.
1484
활비비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목공(木工) 활비비(활비비)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34 / 000
상세설명
[정의]
목재·종이·천·가죽·쇠 등에 구멍을 뚫기 위한 연장.
[내용]
나무, 종이, 천, 가죽, 쇠 등에 구멍을 뜷기 위한 연장이다. 쇠로 된 날과 슴베에 나무 자루를 달아 손으로 쥐고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날의 자름면 모양에 따라 둥근형, 네모형 등이 있다. 돌려서 뚫는 도래 송곳, 두 손바닥으로 비벼서 쓰는 비비송곳, 활시위를 송곳 자루 중간에 돌려 앞뒤로 회전시켜 뚫는 활비비가 있다. 활시위를 송곳자루 중간에 한 바퀴 돌려 앞뒤로 당겨 회전시킨다. 옛말로는 '鑽弓(찬궁)'이라 쓰고 '활바뷔'라 하였다. 이 송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활비비이다.
1483
백자청화초문항아리(白磁靑畵草文壺)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항아리(항아리)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4233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핬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백자청화(靑畵)는 유약을 입히기 전의 그릇 표면에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순백자와 마찬가지로 잡물의 함유가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장석계 유약을 그 위에 씌워서 번조한 것이다. 코발트계의 안료는 페르시아 일대에서 일찍이 개발하여 사용한 것으로 아라비아 상인의 손을 거쳐 중국을 통해 수입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회회청(回回靑)이라고 불렀으며 대단히 귀하게 여겼다. 이 백자항아리는 구연부(口緣部)는 외반되었고,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벌어져 동체(胴體) 중앙에서 최대경을 이룬 뒤 좁아들어 저부(底部)와 만나는 항아리(壺)이다. 구연부(口緣部)의 외측면(外側面) 상․하단(上․下段)에 2조의 선대를 돌렸다. 어깨부분의 상단(上段)에 초문(草文)을 세 곳에 등간격으로 시문하였고, 그 아래 2조의 선대를 돌렸다. 동체(胴體)의 중앙(中央)에 추상화된 초문(草文)을 시문하였다. 유(釉)는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를 시유하였고, 굽은 다리굽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1482
약연(藥碾)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과학기술(科學技術) 의료(醫療) 제약(製藥) 약연(藥碾)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26 / 000
상세설명
[정의]
약재를 가루로 빻거나 즙을 내는 의료기구.
[개념]
넓은 의미로는 약재를 가루로 만들던 기구인 연석(耉石)·맷돌·절구·유발(乳鉢:약재를 넣고 찧기 위한 보시기처럼 생긴 그릇)·약연·분쇄기 등을 모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좁은 의미로는 배[舟]모양의 약연만을 가리킨다. 가운데 홈이 팬 배같이 생긴 그릇에 약재를 넣고, 축을 끼운 주판알 모양의 연알을 앞뒤로 굴려서 빻는다. 약연의 시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음식을 갈아먹던 맷돌류인 연석에서 찾을 수 있다.
[역 사]
기원전 수천 년경의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연석은, 불의 발견 다음으로 인류의 식생활 개선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 음식의 맛을 부드럽고 맛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소화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때로는 이들 연석과 더불어 대추·마늘·도토리·아주까리·아위(阿魏:미나리과의 풀) 등의 약재로 쓰여지는 열매들도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약연이 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점차 안정된 농경생활을 하면서 수백 년 동안 연석을 대물림으로 계속 사용하면, 마치 키나 삼태기 모양으로 닳게 되었고, 청동기·철기시대를 거치는 동안 홈이 더욱 깊게 패어 오늘날의 절구나 약연과 비슷한 형태로까지 발전되었을 것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형태가 갖추어진 맷돌·유발·절구·약연이 사용된 듯하다. 약연의 명칭은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로 '藥耉'과 '藥硏'을 병행하여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모양이 배같이 생겼다 하여 약선(藥船)이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약연(藥硏)이라고 한다.
재료는 돌·나무·청동·놋쇠·청자·백자·오지·무쇠·유리 등 다양한 것을 사용하였는데, 약의 종류와 성분에 따라 달리하였으며, 은·옥·마노(瑪瑙) 같은 값진 재료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약연은 동양의학의 기본원리인 음양법칙에 부합되게 만들어졌다. 음양설에 의하면 태양·위[上]·남성 등은 양이며, 달·아래·대지·여성 등은 음에 속하는데, 음은 정(靜)하고 양은 동(動)하다 하였다. 우리 나라의 약연기를 살펴보면 약연의 받침이나 유발 및 맷돌의 밑짝은 여성의 생식기나 대지를 뜻하기도 하며, 연알 및 공이는 태양이나 남성의 성기를 본떴고 동적이어서 음양설에 부합된다. 음과 양의 이상적인 화합에서 바른[正]것이 생기며, 실제 기구의 요(凹)와 철(凸)이 잘 합치되어야 약이 잘 갈린다. 진자(振子)의 원리를 이용하여 약을 갈기 때문에 힘이 적게 든다.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생활화하였던 우리 나라에서는, 약을 가는 기구의 모양도 그 원리에 입각하여 제작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의 약연의 연알은 주판알과 모양이 거의 같으나,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 두께가 얇고 끝이 날카로운 것이 많다. 그리고 약재를 빻은 다음 퍼내지 않고 그대로 쏟거나 다른 그릇에 담을 수 있도록 양쪽 끝부분 또는 옆에 홈이 팬 것도 있다. 약연의 외부에는 십장생·물고기·개구리·용 등의 그림을 조각하였거나 연년익수(延年益壽)·유능제강(柔能制剛)·수복강녕(壽福康寧)·수산복해(壽山福海) 같은 글자를 새겨넣기도 하고, 독극약이라는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사용자의 신분이나 처지에 따라 조각수법은 물론 규모나 재료도 달라진다. 즉, 궁궐이나 큰 한약방, 가솔이 많은 반가(班家) 같은 데에서는 간혹 길이가 1m를 넘는 것을 사용하기도 하며, 조각도 매우 정교하다.
1481
약절구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과학기술(科學技術) 의료(醫療) 제약(製藥) 약절구(藥절구)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25 / 000
상세설명
[정의]
약을 빻는데 사용하는 절구.
[개념]
원래는 일반 가정에서 절구로 사용되어 깨소금·마늘·생강 등의 조미료를 빻아 쓰는 용기인데, 때로는 가정에서 필요한 구급약을 빻아 쓰기도 하였다.
[역사]
절구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에 자세하지는 않으나, 한대(漢代) 《서청고감(西淸古鑑)》에 한쌍감구(漢雙鑑臼)라 이름 붙여진 절구가 있어 적어도 한대 이전부터 사용·계승되어 왔으리라 짐작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절구는 갈돌의 변형으로 갈돌이나 약연이 곡물 혹은 약의 손실이 많은데 비해서 절구는 손실이 적어 갈돌의 결점을 보완한 기구로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절구는 가루를 내는 데는 좋으나 즙을 내기에는 적합치 못한 것이 결점이다. 약절구에는 그 만든 재료에 따라 쇠약절구·나무약절구·놋쇠약절구 등이 있다. 쇠약절구는 밑부분에 나무 받침대를 대어서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고정시켰으며, 나무약절구는 용목(느티나무 뿌리 부분)을 잘라 팔각으로 다듬고 가운데를 움푹 파서 절구로 삼고 같은 나무로 공이를 만들어 절구와 공이의 부딪히는 힘을 이용해 가루를 만들어 사용했다. 놋쇠약절구는 손위에 올려 놓고 긴 공이를 이용해서 손과 손의 힘을 조절해 가며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