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참깨·들깨·콩 등의 식물로 기름을 짜는 틀.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름틀의 구조는 가위다리모양으로 가랑이가 벌어진 나무의 머리 쪽에 구멍을 뚫고 지면과 약 30도의 각도를 이루도록 받침대를 세워 가랑이진 부분에는 홈을 파고 대롱을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박아서 짜여진 기름이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깨가 든 주머니인 '기름떡'을 이 홈 위에 올려놓으며 그 위에 다시 '기름채 날' 너비 30㎝, 길이 2m 정도의 널쪽을 덮고 돌을 실어둔다. 또 다른 기름틀은 사다리 모양으로 두개의 세장을 걸어서 짠 머리틀을 지면에서 직각이 되게 세우고 아래 세장에 의지하여 서까래 같은 굵은 나무 둘을 약간 벌려놓으며 그 사이에 홈이 패인 널쪽인 '떡판'을 걸쳐둔다. 그리고 이에 기름떡을 올려놓은 뒤에 윗세장에 기름채날을 끼우고 무거운 돌을 실어서 압력을 가한다. 경상남도 진양에서는 팔자(八字)모양으로 벌어진 두툼한 나무 아래쪽에 세장을 끼우고 그 위에 서까래 같은 긴 나무를 좌우로 벌려둔다. 기름채날 중앙에는 둥근 구멍이 있어, 거기에 떡밥을 베보에 싸서 넣는다. 그리고 그 구멍에 알맞은 나무토막을 다시 올려놓은 뒤에 긴 기름채날을 끼우고 무거운 돌을 실어서 짠다. 이것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떡밥에 더 큰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또 조립도 간단한 장점이 있다. 우리의 재래식 기름틀로써는 하루에 한말의 기름을 짤 수 있다. 기름떡은 원료를 잘 씻은 다음 볶아서 절구에 찧었다가 다시 체에 곱게 내린다. 그리고, 그것을 기름주머니에 담아 솥에 넣고 김을 쬔 뒤에 식기 전에 짜야 한다.
1474
종(鍾)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사회제도(社會制度) 교육(敎育) 학교종(學校鐘)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113 / 000
상세설명
[정의]
금속으로 주조한 타악기.
[내용]
악종(樂鐘)·시종(時鐘)·경종(警鐘)·범종(梵鐘) 등 그 범위가 넓다. 그러나 우리 나라 민족문화의 소산물로서 종이라 일컬을 때에는 범종을 말한다. 범종은 일반적으로 동종(銅鐘)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과 같은 나라는 철제종(鐵製鐘)이 많은 데 비하여 우리 나라는 모두 청동(靑銅)으로 주조하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범종이 주종을 이루지만 종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방울] 우리나라 종 가운데 가장 일찍 선을 보인 것은 큰 방울[鐸]이다. 1960년대 초에 대전 괴정동에서 동(銅)으로 만들어진 큰 방울이 거울·칼과 함께 발굴되었다. 그것의 제작연대는 서기전 4세기로 추정되어 청동기시대 이후에도 큰 방울이 줄곧 만들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방울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사서(史書)인 ≪삼국지≫·≪후한서≫·≪진서≫ 등의 〈마한전〉 에 방울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이 보일 뿐이다. 큰 방울이 출토된 대전 땅은 후에 마한의 한 지역이 되었다. 바로 그 땅에서 제사가 행하여지고 방울을 흔들면서 춤추는 잔치와 굿이 벌어졌던 것이다. 중국 역사책에는 북쪽 땅인 예(濊)·부여·고구려 등 여러 부족들의 제사에 관한 기록도 있지만 아쉽게도 방울에 대한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소도는 물론 신이 내리고 오르는 신역(神域)이요 제단이며, 거기에 세워진 나무는 신간(神杆 또는 神竿)의 성격을 가진 성물(聖物)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르내리는 신은 그 땅의 부족들의 생명과 재산과 풍요를 지켜 주는 수호신이다. 그러므로 파종을 마친 5월이나 가을 추수기에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그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잔치도 있게 되고, 사람과 귀신 사이에 굿판도 벌어졌다. 그런데 사람과 귀신 사이에 벌어진 굿판에는 귀신을 즐겁게 만들고 달래는 일이 큰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노래와 춤이 동원되고 그 굿판을 흥분과 황홀경에 젖어들게 함으로써 귀신을 움직이기 위하여서는 악기가 필요하였는데, 그것이 방울과 북이었다. 악기가 사람과 귀신을 흥분시키고 움직이게 하며, 나아가서는 자연현상까지 변화하게 하는 성구(聖具)라는 믿음은 우리 민족에게도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적을 물리치고 병을 낫게 하고 비를 오게도 하고 개게도 하며, 파도를 잠재우기도 하였던 〈만파식적설화 萬波息笛說話〉는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무교(巫敎)를 절대시하고 그 밑에서 집단을 영위하였던 원시인들로서는 굿이 최대의 행사였다. 그러기에 동(銅)을 다룰 수 있는 문화가 열리게 되자 무엇보다도 먼저 신과 관련된 방울·칼·거울 등의 성구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대전 괴정동에서 방울·칼·거울 등이 함께 출토된 것도 흥미롭지만 오늘날까지도 무당의 춤에 방울·칼·거울이 가장 귀중한 무구로 사용되고 있음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범종] 범종은 방울보다 늦게 등장하였다. 최초의 범종은 상원사동종으로 보고되었는데, 이것은 725년(성덕왕 24)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46년 뒤인 771년(혜공왕 7)에는 사상 최대의 걸작인 성덕대왕신종이 탄생하였다. 방울이 무교의 상징물이라면 범종은 불교의 상징물이다. 그리고 방울이 씨족이나 부족집단의 산물이라면 범종은 강력한 왕권전제국가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그 크기에 있어서도 종은 방울과는 비교도 안되게 우람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상징적 의미도 훨씬 심원하고 철학적이다.
[
1473
약틀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과학기술(科學技術) 의료(醫療) 제약(製藥) 약틀(藥틀)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112 / 000
상세설명
[정의]
약탕기에 끓인 약재를 올려놓고 눌러 짜던 나무로 만든 의료기구.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름을 짜던 기름틀이나 국수를 누르던 국수틀과 모양이 비슷하다. 위판과 밑받침판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위판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누름판 역할을 하고, 아래의 받침판에는 3, 4개의 다리가 있으며, 약을 담아 짤 수 있는 홈과 구멍이 있다. 이 홈에다가 끓인 약재를 베헝겊으로 만든 약보자기에 싸서 올려놓고 누르면 구멍으로 약이 흘러내리는데, 이 구멍 아래에 약사발을 놓고 약을 받았다. 일반 가정에서는 약막대기나 굵은 젓가락, 또는 숟가락총으로 대신하기도 하였으나, 사용빈도가 잦은 한약방이나 식솔이 많은 대가에서는 이와 같은 틀을 만들어 썼다. 구멍이 몸 옆으로 난 것, 누름판이 밑받침판과 머리 쪽에서 고정된 것, 전체 모양을 동물처럼 조각한 것 등 그 형태가 다양하였다. 그리고 재료는 주로 재질이 단단한 참나무나 박달나무를 이용하였다.
1472
약절구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과학기술(科學技術) 의료(醫療) 제약(製藥) 약절구(藥절구)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111 / 000
상세설명
[정의]
약을 빻는데 사용하는 절구.
[개념]
원래는 일반 가정에서 절구로 사용되어 깨소금·마늘·생강 등의 조미료를 빻아 쓰는 용기인데, 때로는 가정에서 필요한 구급약을 빻아 쓰기도 하였다.
[역사]
절구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에 자세하지는 않으나, 한대(漢代) 《서청고감(西淸古鑑)》에 한쌍감구(漢雙鑑臼)라 이름 붙여진 절구가 있어 적어도 한대 이전부터 사용·계승되어 왔으리라 짐작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절구는 갈돌의 변형으로 갈돌이나 약연이 곡물 혹은 약의 손실이 많은데 비해서 절구는 손실이 적어 갈돌의 결점을 보완한 기구로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절구는 가루를 내는 데는 좋으나 즙을 내기에는 적합치 못한 것이 결점이다. 약절구에는 그 만든 재료에 따라 쇠약절구·나무약절구·놋쇠약절구 등이 있다. 쇠약절구는 밑부분에 나무 받침대를 대어서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고정시켰으며, 나무약절구는 용목(느티나무 뿌리 부분)을 잘라 팔각으로 다듬고 가운데를 움푹 파서 절구로 삼고 같은 나무로 공이를 만들어 절구와 공이의 부딪히는 힘을 이용해 가루를 만들어 사용했다. 놋쇠약절구는 손위에 올려 놓고 긴 공이를 이용해서 손과 손의 힘을 조절해 가며 사용한다.
[정의]
곡식을 빻거나 찧는 데 쓰는 용구.
[개설]
소나무나 잡목의 맨 밑동을 그대로 잘라 가운데에 큰 구멍을 파서 만든 기구로 옛말로는 '절고'로 표기되었고, 지역에 따라 '도구통'·'도구'·'절기방아'라 부른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절구는 통나무나 돌 또는 쇠로 만들며, 그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돌절구'·'쇠절구' 등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어느 것이나 윗부분에 우묵한 구멍이 있다. 공이도 세 종류의 물질로 만든다. 나무절구의 바닥에는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구멍바닥에 우툴두툴한 쇠판을 깔기도 한다. 쇠절구는 규모가 작으며 주로 양념을 다지는 데에 쓴다. 나무절구 중에도 이와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을 '양념절구'라고 한다. 나무절구는 위아래의 굵기가 같은 것이 대부분이나 남부지방에서는 허리를 잘록하게 좁힌 것을 많이 쓴다. 이에 비하여 돌절구는 상부에 비하여 하부를 좁게 깎으며, 특히 아랫부분을 정교하게 다듬고 이에 조각을 베풀기도 한다. 절구의 크기나 형태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제주도의 절구는 돌을 쪼아만든 확의 주위에 큰 함지박을 끼워놓은 점이 특이하다. 이것은 곡식이 확 밖으로 튀어나와도 이내 다시 쓸어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돌절구에는 돌공이를, 쇠절구에는 쇠공이를, 나무절구에는 나무공이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확이 돌임에도 나무공이를 쓴다. 제주도에서는 이 절구를 '남방애'라고 부른다. 공이의 재료나 모양도 절구에 못지 않게 다양하다. 나무공이는 위아래가 둥글고 손에 쥘 부분만 파내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공이의 끝부분에 돌을 박아서 쓰기도 한다. 돌공이는 공이 끝에 나무자루를 박으므로 자루와 몸이 직각을 이룬다. 쇠공이 중에도 이러한 것이 있다. 특히, 남부지방에서는 한 집에서도 크기가 다른 나무공이를 여러 개 쓴다. 공이의 허리가 걸릴 만큼 파낸 공이대를 부엌 옆 벽에 붙이고 여러 개의 공이를 걸어둔다. 절구는 주로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쓴다. 절구가 크고 일감이 많을 때에는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절구질을 한다. 한 사람이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나무주걱 같은 것으로 곡물을 뒤집어주기도 한다. 이것을 '께낌질'이라고 한다. 절구에 떡을 치기도 한다. 더러는 세탁물을 넣고 공이로 찧어서 때를 빼는 수도 있다. 또, 나무절구는 가로로 뉘어 놓고 개상으로 쓰기도 한다. 나무절구에 나무공이로 벼 한말을 찧는 데에는 한 시간쯤 걸린다. 돌공이는 나무공이에 비하여 시간이 반밖에 걸리지 않지만 공이 자체가 무거워 힘이 많이 든다.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정월의 첫 소날(上丑日 상축일)에 절구질을 하면 집안의 소가 골이 아파서 죽거나 병이 생긴다고 하여 이를 삼간다. 또, 우리 나라의 중부 이남에서는 보름날 새벽에 절굿공이를 가지고 집마당이나 밭에 가서 "디지기방아 찧자, 디지기방아 찧자."하면서 찧고 다닌다. 이렇게 하면 굼벵이나 두더지·독벌레들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보름날 아침 절굿공이로 마당의 네 귀퉁이를 찧고 나서 땅이 얼마나 들어갔는가를 살핀다. 이때에 동쪽은 봄, 남쪽은 여름, 서쪽은 가을, 북쪽은 겨울로 여기고 땅이 많이 팬 쪽의 땅은 그 해에 물이 흔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가뭄이 든다고 점을 친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절구에 여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보름날 아침에 절구 주위에 열두 달을 상징하는 열두 가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