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논이나 밭의 흙을 고르거나, 씨뿌린 뒤 흙을 덮을 때, 또는 곡식을 모으거나 펴는 데 쓰는 연장. 작은 것은 '고래당그래'라 하여 아궁이의 재를 쳐내기도 한다.
[내용]
≪농사직설(農事直說)≫에는 '把撈(鄕名 推介)', ≪고사신서(攷事新書)≫ 농포문(農圃門)에는 '木隘'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고미慊'로 표기되었다. 그리고 ≪고사신서≫ 농포문의 '木爬'도 고무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 거문데(경기도 안산)·땡길개(충청북도 봉양)·고물개(충청남도, 경기도 안성)·당그래(경상남도 영산, 경기도 덕적)·밀기(경상북도 성주)·당글개(전라남도 거문도)·밀개 또는 멸개(강원도 도계)·미래(전라남도 광산) 등으로 불린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형태는 일정하지 않으나 직사각형·반달형 또는 사다리형의 작은 널조각 위쪽에 둥근 자루를 박아 고무래정자(丁字)의 형태를 이룬다. 어떤 곳에서는 고무래에 짧은 발을 달아 쓰기도 하는데, 발고무래라고 한다. ≪농사직설≫의 '뇌목첨기하단(酪木尖其下端)'은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439
가래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농업(農業) 파종경작(播種耕作) 가래(가래)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779 / 000
상세설명
[정의]
정지작업이나 흙을 옮기는 작업 등에서 흙을 파서 던지는 데 쓰는 농기구.
[개념]
삽을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넓죽한 삽날에 긴 나무자루를 박고, 삽날 윗부분 좌우측에 각각 줄을 매어 사용한다. 보통 3∼5인이 사용하는데,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 2∼4인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 당기며 작업을 한다. 삽보다 작업 능률이 높고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구조 및 기능]
≪훈민정음해례≫에는 '佳래[嵩]'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領)'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堪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가래를 연이은 것에 장부꾼 두 사람과 줄잡이 여덟 사람 등 모두 열 사람이 하는 '열목 카래' 등이 있는데, 보통은 '세손목 한카래'로 일을 한다. 흙을 떠서 옮기는 일을 '가래질'이라고 하고 가래로 떠낸 흙덩이를 '가랫밥'이라고 한다. 또, 가래를 세워 흙을 깎는 일을 '칼가래질', 논둑이나 밭둑을 깎는 일을 '후릿가래질'이라고 한다. 가래로는 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진흙밭이나 물이 많이 나는 논을 갈고, 밭이랑을 일구기도 한다. 또, 흙을 떠서 던지는 데에도 쓰며, 도랑을 치고 논둑을 쌓거나 깎을 때에도 이용한다. 근래에는 집터를 닦거나 도로공사를 할 때 쓰는 일이 많은데, 쇠를 통으로 부어서 삽처럼 만들고 양 귀에 고리를 단 것이 흔하다. 남자 세 사람이 하루 6백여 평의 진흙밭을 고를 수 있다. 수명은 대체로 4, 5년이며 재래식의 무게는 2.5㎏쯤 된다.
[부분 명칭]
가래의 부분 명칭은 다음과 같다. ① 가래장부:가래의 자루와 몸. ② 군두구멍:가랫바닥의 좌우 양쪽에 뚫은 구멍으로 거기에 군두새끼를 꿴다. ③ 군두새끼:군두구멍에 꿰어서 가랫줄을 얼러 매는 가는 새끼. 흙이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죽을 쓰기도 한다. ④ 꺾쇠:가랫바닥과 날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박는 쇠못. ⑤ 군두:가래의 날을 맞추어 끼우는 넓적한 판. ⑥ 가랫바닥:가래의 몸으로 위에 긴 자루가 달리고 끝이 둥글삐죽하여 가랫날을 끼우게 된 넓적한 나무. ⑦ 각시노리:가래의 양편에 있는 군두구멍을 얼러 맨 군두새끼가 감아 돌아간 장부의 목 부분. ⑧ 게재비 구멍:가래 날개 위쪽으로 벌어진 틈으로 홈처럼 되어 있어 나무 바탕을 끼워 맞추는 자리. ⑨ 장부촉:장부의 끝. ⑩ 가랫날:가래 끝에 끼우는 쇠로서 삽 모양으로 끝이 둥글삐죽하고, 위는 가로 홈이 져서 가랫바닥의 끝이 끼게 되었으며, 양편에 꺾쇠구멍이 있다. ⑪ 살군두:가래의 날을 장부의 바닥에 얼러 매는 줄로 꺾쇠 대신 쓴다.
1438
가래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농업(農業) 파종경작(播種耕作) 가래(가래)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778 / 000
상세설명
[정의]
정지작업이나 흙을 옮기는 작업 등에서 흙을 파서 던지는 데 쓰는 농기구.
[개념]
삽을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넓죽한 삽날에 긴 나무자루를 박고, 삽날 윗부분 좌우측에 각각 줄을 매어 사용한다. 보통 3∼5인이 사용하는데,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 2∼4인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 당기며 작업을 한다. 삽보다 작업 능률이 높고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구조 및 기능]
≪훈민정음해례≫에는 '佳래[嵩]'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領)'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堪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가래를 연이은 것에 장부꾼 두 사람과 줄잡이 여덟 사람 등 모두 열 사람이 하는 '열목 카래' 등이 있는데, 보통은 '세손목 한카래'로 일을 한다. 흙을 떠서 옮기는 일을 '가래질'이라고 하고 가래로 떠낸 흙덩이를 '가랫밥'이라고 한다. 또, 가래를 세워 흙을 깎는 일을 '칼가래질', 논둑이나 밭둑을 깎는 일을 '후릿가래질'이라고 한다. 가래로는 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진흙밭이나 물이 많이 나는 논을 갈고, 밭이랑을 일구기도 한다. 또, 흙을 떠서 던지는 데에도 쓰며, 도랑을 치고 논둑을 쌓거나 깎을 때에도 이용한다. 근래에는 집터를 닦거나 도로공사를 할 때 쓰는 일이 많은데, 쇠를 통으로 부어서 삽처럼 만들고 양 귀에 고리를 단 것이 흔하다. 남자 세 사람이 하루 6백여 평의 진흙밭을 고를 수 있다. 수명은 대체로 4, 5년이며 재래식의 무게는 2.5㎏쯤 된다.
[부분 명칭]
가래의 부분 명칭은 다음과 같다. ① 가래장부:가래의 자루와 몸. ② 군두구멍:가랫바닥의 좌우 양쪽에 뚫은 구멍으로 거기에 군두새끼를 꿴다. ③ 군두새끼:군두구멍에 꿰어서 가랫줄을 얼러 매는 가는 새끼. 흙이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죽을 쓰기도 한다. ④ 꺾쇠:가랫바닥과 날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박는 쇠못. ⑤ 군두:가래의 날을 맞추어 끼우는 넓적한 판. ⑥ 가랫바닥:가래의 몸으로 위에 긴 자루가 달리고 끝이 둥글삐죽하여 가랫날을 끼우게 된 넓적한 나무. ⑦ 각시노리:가래의 양편에 있는 군두구멍을 얼러 맨 군두새끼가 감아 돌아간 장부의 목 부분. ⑧ 게재비 구멍:가래 날개 위쪽으로 벌어진 틈으로 홈처럼 되어 있어 나무 바탕을 끼워 맞추는 자리. ⑨ 장부촉:장부의 끝. ⑩ 가랫날:가래 끝에 끼우는 쇠로서 삽 모양으로 끝이 둥글삐죽하고, 위는 가로 홈이 져서 가랫바닥의 끝이 끼게 되었으며, 양편에 꺾쇠구멍이 있다. ⑪ 살군두:가래의 날을 장부의 바닥에 얼러 매는 줄로 꺾쇠 대신 쓴다.
1437
약틀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과학기술(科學技術) 의료(醫療) 제약(製藥) 약틀(藥틀)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766 / 000
상세설명
[정의]
약탕기에 끓인 약재를 올려놓고 눌러 짜던 나무로 만든 의료기구.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름을 짜던 기름틀이나 국수를 누르던 국수틀과 모양이 비슷하다. 위판과 밑받침판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위판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누름판 역할을 하고, 아래의 받침판에는 3, 4개의 다리가 있으며, 약을 담아 짤 수 있는 홈과 구멍이 있다. 이 홈에다가 끓인 약재를 베헝겊으로 만든 약보자기에 싸서 올려놓고 누르면 구멍으로 약이 흘러내리는데, 이 구멍 아래에 약사발을 놓고 약을 받았다. 일반 가정에서는 약막대기나 굵은 젓가락, 또는 숟가락총으로 대신하기도 하였으나, 사용빈도가 잦은 한약방이나 식솔이 많은 대가에서는 이와 같은 틀을 만들어 썼다. 구멍이 몸 옆으로 난 것, 누름판이 밑받침판과 머리 쪽에서 고정된 것, 전체 모양을 동물처럼 조각한 것 등 그 형태가 다양하였다. 그리고 재료는 주로 재질이 단단한 참나무나 박달나무를 이용하였다.
1436
민씨묘지석(閔氏墓誌石)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묘지(墓誌)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765 / 000
상세설명
[정의]
피장자의 성명, 직함, 가족세계, 생시행적 등을 써서 무덤 가운데에 남기는 기록물이다.
[발달과정/역사]
무덤방(墓室)에 직접 묵서(墨書) 혹은 주서(朱書)하거나 무덤방 벽면에 새기기도 하고, 일반적으로는 돌 위에 새기는 것이나 틀을 이용하여 벽돌, 혹은 주철을 소재로 작성된 것에서 청자나 백자에 쓰여진 것으로 남겨진 것 등이 시대와 피장자의 신분, 장법 등에 따라서 다양하다. 원래 묘지는 중국에서 동한(東漢) 시기에 기원하여 위진시대 이후 성행하였는데 이러한 풍습이 한국에도 유입된 것이라 하겠다. 河南省 洛陽에서 출토된 한(漢) 연평원년(延平元年:A.D. 106) 고무중(賈武仲)의 처 마강(馬姜)의 묘지는 기재 내용이 묘지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완성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江蘇省 丕縣에서 발견된 무우(繆宇)의 묘에는 뒷방(後室) 입구 상단에 피장자의 성명, 사망, 장례일자, 관직, 송사(頌辭) 등의 내용이 새겨 있다. 한국에서 묘지라 하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묘에서 주로 보이는 명문이 새겨진 방형의 소석판(小石版)이나 도판(陶版) 등의 형태를 일컫는다. 하지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넓은 의미에서 묘지라고 하면 무덤의 벽면에 쓰여지거나 새겨진 명문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에는 무덤방 벽면에 묵서로 묘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현재 3기의 고분이 그러한데 모두루총(牟頭婁塚), 동수묘(冬壽墓)로 알려진 안악(安岳) 3호분, 그리고 덕흥리(德興里) 고분이 그것이다. 협의의 개념에서 소판의 형식을 빌린 묘지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백제 무녕왕릉(武寧王陵)에서 나온 것이다. 벽돌무덤인 무녕왕릉의 널방(玄室) 입구에서 왼쪽에는 왕비의 지석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왕의 것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는 양나라 때 오수전이 한 꾸러미 놓여 있었다. 사실 무녕왕릉의 묘지석은 묘지라고 부르기보다는 중국의 장례 풍속을 따라 지신으로부터 땅을 사들인다는 뜻으로 만든 매지권(買地權)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한국에서 묘지가 흔하게 발견되기는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고려시대에는 오석(烏石), 혹은 점판암계의 장방형 석판을 물갈이해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오석이나 점판암과 함께 자기로 된 도판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특히 흰색의 방탕에 청색으로 글씨를 쓴 청화백자계의 묘지가 많이 쓰였다. 고려시대의 묘지가 중국 묘지의 체제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면, 조선시대의 묘지는 재료, 형태, 내용 등에서 고려시대의 것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소판형(小板形)의 기본 틀에서 벗어난 조선시대의 묘지는 묘비모양, 단지모양, 원통형, 표주형(標柱形) 등 다양하다. 또한 장례의식 중 묘지를 안치하는 광정에서 다양한 면모가 엿보이기 때문에 묘지의 작성과 그것의 매납은 단순히 피장자의 이름이나 약력을 알린다는 것 이상의 관념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