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좁고 긴 쇠판에 날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齒]와 같이 내어 톱틀에 끼워서 둘 또는 혼자, 앞뒤로 문질러 나무나 돌을 자르는 데 사용하는 연장.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鋸[톱]'·'鋸齒[톱날]' 외에 톱이 나무 사이를 왕복하는 것을 '行(행)', 톱날을 '목설거설(木屑鋸屑)'로 적고 있다.
[역사]
톱에 관한 고고학적인 발견례는 매우 드물어, 1917년에 조사된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일례가 있을 뿐이다. 반남면의 고분군은 고총식(高塚式) 봉토 아래 옹관이 매장된 이른바 옹관묘이다. 이 반남면 신촌리 제9호분 옹관에서 출토된 톱은 함께 출토된 금동관과 함께 백제의 유품으로 알려졌으며 톱날이 전신에 만들어져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현존치수는 길이 26. 5㎝, 너비 3㎝이고, 몸통의 머리 부분을 삼각형으로 하였으며 끝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 부분에 목질(木質)의 흔적이 있고, 날은 약간 위로 굽어져 있다. 상하 양쪽에 톱날이 있는데 아래쪽 날이 위쪽보다 크고 날은 좌우로 어긋나 있으며, 톱날들은 몸체의 앞을 향하여 날이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앞으로 밀어서 나무를 절단하는 톱으로 보인다. 이 톱은 5,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 신촌리에서 출토된 이 톱 외에 현존하는 톱은 대개 조선시대의 것이며, 그 형태도 백제고분의 출토톱과는 다르다. 조선시대의 톱은 톱량[鋸樑]·톱자루·동발·탕개로 구성되어 톱량 양쪽에 톱자루의 밑부분인 톱소매를 하나씩 연결하고, 톱자루 중간쯤에 동발을 지지한 다음, 톱자루 양쪽 맨 위를 탕개로 걸어 죄어 탕개목을 동발에 괴어놓는다. 톱질은 혼자 또는 둘이서 하는데, 작은 나무를 자르거나 마름질할 때는 혼자서 한다. 혼자서 톱질을 할 때에는 모탕(목재를 자르거나 창문짝 등을 가공하기 위하여 그 밑에 받치는 대) 또는 말을 받쳐놓고 사용하며, 원목을 켤 때는 대톱이나 무량톱[無樑鋸]을 사용한다. 이때는 원목을 톱질틀에 괴어 톱질한다. 조선시대에 사용되어 온 톱을 열거하면, 켤톱·자름톱·대톱·중톱·소톱 외에 특수한 용도를 위한 돌림톱·실톱·칼톱·절톱·손톱·세톱 등이 있다. 켤톱은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목재의 섬유 방향으로 켜는 것이다. 톱니의 모양은 70° 정도의 삼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날어김을 적게 하여 마모가 크지 않게 한다. 켤 때는 톱니 끝이 끌과 같은 기능을 해서 켜지게 된다. 켤톱의 다른 말로는 인거톱·잉걸톱·내릴톱·세로톱 등이 있다. 인거톱이란 원목을 제재하는 대형톱을 말하며,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인거장(引鋸匠)이라고 한다. 자름톱[斷鋸]은 목재의 섬유 방향에 대하여 직각으로 자르는 톱이다. 톱니의 날어김을 크게 좌우 두 줄로 만든다. 지름이 큰 원목을 자르는 톱은 특히 톱량과 동발 사이를 넓게 만들어 사용한다. 자름톱의 다른 말로는 단거톱·끈치톱·썰음톱·가로톱 등이 있다. 대톱[大鋸]은 주로 원목을 제재할 때 둘이서 밀고 당기면서 사용하는 것으로, 톱니를 크게 하여 한번에 많이 썰 수 있도록 되었다. 중톱[中鋸]은 일반적으로 목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톱량을 톱소매에 끼울 때 톱량이 회전할 수 있도록 하여 켤 때나 자를 때 마음대로 조정,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톱[小鋸]은 일반 목수뿐 아니라 창호나 가구를 짜는 소목장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톱니가 작고 간격도 좁게 되어 있다. 그 밖에 돌림톱은 곡선이나 구멍을
[정의]
좁고 긴 쇠판에 날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齒]와 같이 내어 톱틀에 끼워서 둘 또는 혼자, 앞뒤로 문질러 나무나 돌을 자르는 데 사용하는 연장.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鋸[톱]'·'鋸齒[톱날]' 외에 톱이 나무 사이를 왕복하는 것을 '行(행)', 톱날을 '목설거설(木屑鋸屑)'로 적고 있다.
[역사]
톱에 관한 고고학적인 발견례는 매우 드물어, 1917년에 조사된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일례가 있을 뿐이다. 반남면의 고분군은 고총식(高塚式) 봉토 아래 옹관이 매장된 이른바 옹관묘이다. 이 반남면 신촌리 제9호분 옹관에서 출토된 톱은 함께 출토된 금동관과 함께 백제의 유품으로 알려졌으며 톱날이 전신에 만들어져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현존치수는 길이 26. 5㎝, 너비 3㎝이고, 몸통의 머리 부분을 삼각형으로 하였으며 끝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 부분에 목질(木質)의 흔적이 있고, 날은 약간 위로 굽어져 있다. 상하 양쪽에 톱날이 있는데 아래쪽 날이 위쪽보다 크고 날은 좌우로 어긋나 있으며, 톱날들은 몸체의 앞을 향하여 날이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앞으로 밀어서 나무를 절단하는 톱으로 보인다. 이 톱은 5,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 신촌리에서 출토된 이 톱 외에 현존하는 톱은 대개 조선시대의 것이며, 그 형태도 백제고분의 출토톱과는 다르다. 조선시대의 톱은 톱량[鋸樑]·톱자루·동발·탕개로 구성되어 톱량 양쪽에 톱자루의 밑부분인 톱소매를 하나씩 연결하고, 톱자루 중간쯤에 동발을 지지한 다음, 톱자루 양쪽 맨 위를 탕개로 걸어 죄어 탕개목을 동발에 괴어놓는다. 톱질은 혼자 또는 둘이서 하는데, 작은 나무를 자르거나 마름질할 때는 혼자서 한다. 혼자서 톱질을 할 때에는 모탕(목재를 자르거나 창문짝 등을 가공하기 위하여 그 밑에 받치는 대) 또는 말을 받쳐놓고 사용하며, 원목을 켤 때는 대톱이나 무량톱[無樑鋸]을 사용한다. 이때는 원목을 톱질틀에 괴어 톱질한다. 조선시대에 사용되어 온 톱을 열거하면, 켤톱·자름톱·대톱·중톱·소톱 외에 특수한 용도를 위한 돌림톱·실톱·칼톱·절톱·손톱·세톱 등이 있다. 켤톱은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목재의 섬유 방향으로 켜는 것이다. 톱니의 모양은 70° 정도의 삼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날어김을 적게 하여 마모가 크지 않게 한다. 켤 때는 톱니 끝이 끌과 같은 기능을 해서 켜지게 된다. 켤톱의 다른 말로는 인거톱·잉걸톱·내릴톱·세로톱 등이 있다. 인거톱이란 원목을 제재하는 대형톱을 말하며,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인거장(引鋸匠)이라고 한다. 자름톱[斷鋸]은 목재의 섬유 방향에 대하여 직각으로 자르는 톱이다. 톱니의 날어김을 크게 좌우 두 줄로 만든다. 지름이 큰 원목을 자르는 톱은 특히 톱량과 동발 사이를 넓게 만들어 사용한다. 자름톱의 다른 말로는 단거톱·끈치톱·썰음톱·가로톱 등이 있다. 대톱[大鋸]은 주로 원목을 제재할 때 둘이서 밀고 당기면서 사용하는 것으로, 톱니를 크게 하여 한번에 많이 썰 수 있도록 되었다. 중톱[中鋸]은 일반적으로 목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톱량을 톱소매에 끼울 때 톱량이 회전할 수 있도록 하여 켤 때나 자를 때 마음대로 조정,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톱[小鋸]은 일반 목수뿐 아니라 창호나 가구를 짜는 소목장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톱니가 작고 간격도 좁게 되어 있다. 그 밖에 돌림톱은 곡선이나 구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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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상업(商業) 계측/계량(計測/計量) 저울및추(저울및추)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110 / 000
상세설명
[정의]
물체의 무게를 다는 데 쓰는 기구의 총칭.
[유래]
저울을 언제부터 썼는지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청동야금을 시작한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이미 사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한 기원전 1000년경에는 저울이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이때에는 청동단검을 비롯하여 창끝·활촉·방패 따위의 무기류와 칼 따위의 생활구, 각종 마구류, 여러 가지 장식품들이 대량 생산되었다. 이들은 모두 구리·납·아연·철·은·주석 따위를 정밀하게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이들의 비율을 조정하는 데 저울이 필수품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
[종류]
저울에는 맞저울·대저울·앉은뱅이저울·용수철저울·약저울 따위가 있다. ① 맞저울:천평칭(天平秤) 또는 천칭(天秤)이라고도 한다. 가운데에 세운 줏대에 지렛대를 걸쳤으며, 양쪽 끝에 똑같은 크기의 저울판을 달았다. 한쪽에는 달 물체를, 다른 쪽에는 추를 놓아 평행을 이루게 하여 무게를 다는 것이다. 맞저울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양쪽을 똑같이 하여 그 무게를 알아내는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인류가 최초로 쓴 것이 맞저울로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오늘날 맞저울의 원리와 구조가 거의 같은 것이 사용되었다. 그 뒤 기원전 5세기경에 이르러 접시를 매다는 방법 등의 개량된 저울이 나왔으며, 당시에는 이것으로 0.5g의 무게까지 측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박지원(朴趾源)은 그의 ≪연행록(燕行錄)≫ 선집에 중국의 맞저울[天平]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 다음, 이 저울의 정확성에 감탄하면서 술까지도 맞저울에 달아 파는 중국인들의 관행을 부러워하는 내용을 실었다(연원직지 제6권 유관별록). 또 영조 때의 학자인 홍대용(洪大容)의 ≪담헌서(湛軒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외집 10권 연기·기용),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맞저울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맞저울은 달고자 하는 물체와 무게가 같은 추, 그리고 양쪽의 무게를 받는 튼튼한 줏대가 필요한 까닭에 귀금속이나 약재 따위의 가벼운 물체를 다는 데에만 쓰였다. ② 대저울:이러한 약점을 보완하여, 제법 무겁고 부피 또한 큰 물체를 달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 대저울이다. 이것은 지렛대에 눈금을 매긴 것으로, 물체의 무게에 따라 추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평형을 이루었을 때 그 위치의 눈금을 읽어 무게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저울은 기원전 수세기에서 1세기에 이르는 사이에 나왔으며, 기원전 200년경 이탈리아의 위로(Wiro)가 발명하였다고 전한다. '로마저울'이라는 서양 이름은 이에서 비롯하였다. 이 저울은 소형과 대형 두 가지가 있다. 소형은 한 끝에 작은 저울판이 달린 것으로, 이에 물체를 올려놓아 무게를 달지만 쌀가마같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은 대형을 써야 한다. 이때에는 물체를 새끼 따위로 단단히 묶은 다음 이를 저울고리에 거는 한편, 손잡이 끈에 굵은 막대기를 걸고 두 사람이 마주서서 어깨로 받치며, 다른 한 사람이 추를 움직여서 무게를 알아낸다. 우리 농촌에서는 근래까지도 곡물 가마 따위의 무게를 이 저울로 달았다. ③ 앉은뱅이저울:용수철에 힘을 가하였을 때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한 저울이다. '앉은 저울' 또는 '대칭(臺秤)'이라고도 한다. 저울판 위에 물체를 올려 놓고 용수철에 의한 무게의 전달을 위쪽 저울대에서 추로 조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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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상업(商業) 계측/계량(計測/計量) 저울및추(저울및추)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109 / 000
상세설명
[정의]
물체의 무게를 다는 데 쓰는 기구의 총칭.
[유래]
저울을 언제부터 썼는지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청동야금을 시작한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이미 사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한 기원전 1000년경에는 저울이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이때에는 청동단검을 비롯하여 창끝·활촉·방패 따위의 무기류와 칼 따위의 생활구, 각종 마구류, 여러 가지 장식품들이 대량 생산되었다. 이들은 모두 구리·납·아연·철·은·주석 따위를 정밀하게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이들의 비율을 조정하는 데 저울이 필수품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
[종류]
저울에는 맞저울·대저울·앉은뱅이저울·용수철저울·약저울 따위가 있다. ① 맞저울:천평칭(天平秤) 또는 천칭(天秤)이라고도 한다. 가운데에 세운 줏대에 지렛대를 걸쳤으며, 양쪽 끝에 똑같은 크기의 저울판을 달았다. 한쪽에는 달 물체를, 다른 쪽에는 추를 놓아 평행을 이루게 하여 무게를 다는 것이다. 맞저울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양쪽을 똑같이 하여 그 무게를 알아내는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인류가 최초로 쓴 것이 맞저울로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오늘날 맞저울의 원리와 구조가 거의 같은 것이 사용되었다. 그 뒤 기원전 5세기경에 이르러 접시를 매다는 방법 등의 개량된 저울이 나왔으며, 당시에는 이것으로 0.5g의 무게까지 측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박지원(朴趾源)은 그의 ≪연행록(燕行錄)≫ 선집에 중국의 맞저울[天平]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 다음, 이 저울의 정확성에 감탄하면서 술까지도 맞저울에 달아 파는 중국인들의 관행을 부러워하는 내용을 실었다(연원직지 제6권 유관별록). 또 영조 때의 학자인 홍대용(洪大容)의 ≪담헌서(湛軒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외집 10권 연기·기용),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맞저울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맞저울은 달고자 하는 물체와 무게가 같은 추, 그리고 양쪽의 무게를 받는 튼튼한 줏대가 필요한 까닭에 귀금속이나 약재 따위의 가벼운 물체를 다는 데에만 쓰였다. ② 대저울:이러한 약점을 보완하여, 제법 무겁고 부피 또한 큰 물체를 달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 대저울이다. 이것은 지렛대에 눈금을 매긴 것으로, 물체의 무게에 따라 추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평형을 이루었을 때 그 위치의 눈금을 읽어 무게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저울은 기원전 수세기에서 1세기에 이르는 사이에 나왔으며, 기원전 200년경 이탈리아의 위로(Wiro)가 발명하였다고 전한다. '로마저울'이라는 서양 이름은 이에서 비롯하였다. 이 저울은 소형과 대형 두 가지가 있다. 소형은 한 끝에 작은 저울판이 달린 것으로, 이에 물체를 올려놓아 무게를 달지만 쌀가마같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은 대형을 써야 한다. 이때에는 물체를 새끼 따위로 단단히 묶은 다음 이를 저울고리에 거는 한편, 손잡이 끈에 굵은 막대기를 걸고 두 사람이 마주서서 어깨로 받치며, 다른 한 사람이 추를 움직여서 무게를 알아낸다. 우리 농촌에서는 근래까지도 곡물 가마 따위의 무게를 이 저울로 달았다. ③ 앉은뱅이저울:용수철에 힘을 가하였을 때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한 저울이다. '앉은 저울' 또는 '대칭(臺秤)'이라고도 한다. 저울판 위에 물체를 올려 놓고 용수철에 의한 무게의 전달을 위쪽 저울대에서 추로 조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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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상업(商業) 계측/계량(計測/計量) 저울및추(저울및추)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108 / 000
상세설명
[정의]
물체의 무게를 다는 데 쓰는 기구의 총칭.
[유래]
저울을 언제부터 썼는지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청동야금을 시작한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이미 사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한 기원전 1000년경에는 저울이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이때에는 청동단검을 비롯하여 창끝·활촉·방패 따위의 무기류와 칼 따위의 생활구, 각종 마구류, 여러 가지 장식품들이 대량 생산되었다. 이들은 모두 구리·납·아연·철·은·주석 따위를 정밀하게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이들의 비율을 조정하는 데 저울이 필수품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
[종류]
저울에는 맞저울·대저울·앉은뱅이저울·용수철저울·약저울 따위가 있다. ① 맞저울:천평칭(天平秤) 또는 천칭(天秤)이라고도 한다. 가운데에 세운 줏대에 지렛대를 걸쳤으며, 양쪽 끝에 똑같은 크기의 저울판을 달았다. 한쪽에는 달 물체를, 다른 쪽에는 추를 놓아 평행을 이루게 하여 무게를 다는 것이다. 맞저울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양쪽을 똑같이 하여 그 무게를 알아내는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인류가 최초로 쓴 것이 맞저울로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오늘날 맞저울의 원리와 구조가 거의 같은 것이 사용되었다. 그 뒤 기원전 5세기경에 이르러 접시를 매다는 방법 등의 개량된 저울이 나왔으며, 당시에는 이것으로 0.5g의 무게까지 측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박지원(朴趾源)은 그의 ≪연행록(燕行錄)≫ 선집에 중국의 맞저울[天平]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 다음, 이 저울의 정확성에 감탄하면서 술까지도 맞저울에 달아 파는 중국인들의 관행을 부러워하는 내용을 실었다(연원직지 제6권 유관별록). 또 영조 때의 학자인 홍대용(洪大容)의 ≪담헌서(湛軒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외집 10권 연기·기용),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맞저울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맞저울은 달고자 하는 물체와 무게가 같은 추, 그리고 양쪽의 무게를 받는 튼튼한 줏대가 필요한 까닭에 귀금속이나 약재 따위의 가벼운 물체를 다는 데에만 쓰였다. ② 대저울:이러한 약점을 보완하여, 제법 무겁고 부피 또한 큰 물체를 달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 대저울이다. 이것은 지렛대에 눈금을 매긴 것으로, 물체의 무게에 따라 추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평형을 이루었을 때 그 위치의 눈금을 읽어 무게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저울은 기원전 수세기에서 1세기에 이르는 사이에 나왔으며, 기원전 200년경 이탈리아의 위로(Wiro)가 발명하였다고 전한다. '로마저울'이라는 서양 이름은 이에서 비롯하였다. 이 저울은 소형과 대형 두 가지가 있다. 소형은 한 끝에 작은 저울판이 달린 것으로, 이에 물체를 올려놓아 무게를 달지만 쌀가마같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은 대형을 써야 한다. 이때에는 물체를 새끼 따위로 단단히 묶은 다음 이를 저울고리에 거는 한편, 손잡이 끈에 굵은 막대기를 걸고 두 사람이 마주서서 어깨로 받치며, 다른 한 사람이 추를 움직여서 무게를 알아낸다. 우리 농촌에서는 근래까지도 곡물 가마 따위의 무게를 이 저울로 달았다. ③ 앉은뱅이저울:용수철에 힘을 가하였을 때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한 저울이다. '앉은 저울' 또는 '대칭(臺秤)'이라고도 한다. 저울판 위에 물체를 올려 놓고 용수철에 의한 무게의 전달을 위쪽 저울대에서 추로 조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