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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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해설
분청사기는 쇠퇴해가는 고려 상감 청자로부터 출발하여 15세기 전반기에 다양한 여러 기법을 고안, 발전시켜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5세기 후반에 경기도 광주에 백자 중심의 관요(官窯)가 성립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다가 16세기 중엽이후 백자에 흡수됨으로써 소멸하였다.
분청사기의 특징으로는 백토를 그릇 표면에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분청사기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무늬에 있다.
금번에 소개하는 유물은 인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기법은 기면(器面)에 도장을 찍어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주로 백토를 넣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상감기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유물은 굽은 다소 높고 풍만한 몸체(胴體)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아가리(口緣部)까지 올라가 약간 외반(外反)되었다. 내저면(內底面)에는 국화문(菊花文)과 6원문(六圓文) 그리고 나비문(蝶文)으로 장식하고, 그 주위에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돌렸다. 내측면(內側面)에는 원열문(圓烈文)을 시문하였다. 외면에는 아가리에서부터 초문대까지 원열문 그리고 연판문대가 돌려 있다. 유색은 녹청색을 띠고 있으며 내저 중앙에는 유약이 두껍게 뭉쳐 있다. 기면(器面)에 미세한 빙렬(氷裂)이 나타나 있고 굽의 접지면(接地面)에는 모래 받침의 흔적이 남아있다.
2008년 9월의 유물 [도자편]분청사기인화문발 (粉靑沙器印花文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