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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2525 무문토기호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17 / 000
상세설명 [개념]
한국 청동기시대의 토기를 일괄해서 일반적으로 '민무늬토기'하고 하나 민무늬토기(無文土器)라는 용어는 원래 과거 일본인학자등이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는 물론 간토기(磨硏土器)와도 구분하였던 용어이다. 이러한 개념을 충실히 따라서 북한에서는 청동기시대의 토기를 갈색민그릇과 간그릇으로 나누어 살피고 있지만, 남한에서는 마연(磨硏)이나 채색(彩色) 등의 표면처리 수법에 관계없이 통틀어 민무늬토기라고 한다. 민무늬토기란 문자 그대로라면 무늬가 없는 토기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토기 중 지역에 따라서는 평북 신암리토기(新岩里土器)를 비롯하여 무늬가 장식된 예가 많다. 또한 시대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남한에서 실제 사용한 예를 보면 민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의 토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B.C.3세기 이후 철기시대 후기형식의 민무늬토기, 그리고 B.C.1세기경 한대(漢代) 철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을 때도 연전히 민무늬토기가 사용되었다. 심지어는 남한의 원삼국시대 혹은 삼국시대 전기에 타날무늬토기(打捺文土器)와 공반하는 무늬없는 토기, 예를 들어 한강유역의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를 민무늬토기로 보기도 하는데 이 경우 민무늬토기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 적용된 것으로 시대적 의미가 약해지기 때문에 곤란하다. 나아가서 민무늬토기를 시대의 표지유물(標識遺物)로 보아 청동기시대를 대신하여 사용하는 '민무늬토기시대'라는 개념은 청동기뿐만 아니라, 철기 사용기에 두루 걸쳐 지나치게 포괄하는 시대개념(時代槪念)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발달과정/역사]
대체로 본격적인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사용기가 되면 민무늬토기의 분포권은 더욱 확대되어 북으로는 송화강 유역, 남으로는 금강, 영산강 그리고 낙동강 유역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도까지 이른다. 우선 요하에서 압록강 하류에 이르는 지역에 있어서 비파형동검 사용기의 표지적인 토기로는 의주 미송리(美松里) 동굴유적에서 처음 확인된 미송리형토기(美松里型土器)가 있다. 전형적인 미송리형토기는 표면을 마연하고 납작 항아리 양쪽 옆에 손잡이가 달렸으며, 폭이 넓게 올라가다가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면서, 동체와 목에 묶음식 대선문(帶線文)을 두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송리 항아리형토기와 공반하는 깊은 바리에는 전 단계에 유행하였던 겹아가리가 많다. 이 지방의 미송리형토기는 다른 지방으로 퍼져 송화강 유역에서는 시투안샨쯔형(西團山子型) 등으로 지역화하여 나타난다. 나아가 대동강 유역에서는 평양 남경 출토 검은간토기를 미송리형토기로 보기도 한다. 송화강 유역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미송리형토기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시투안샨쯔형토기(西團山子型)가 초기 부여의 표지유물로 보고, 양자 사이에 나타나는 토기형식의 유사성을 들어 고조선과 부여 주민간에 교류와 친분이 있었다고 북한학자들은 주장한다. 한강 유역과 그 이남지방에는 대동강 유역의 신흥동식토기가 지역화한 가락동식토기(可樂洞式土器)가 있는데, 겹아가리의 빗금무늬가 연속적으로 시문(施文)되고, 전체 그릇 모양은 바닥이 넓어져 팽이형(角形)에서 화분형(花盆形)으로 바뀐다. 같은 한강 상류의 흔암리(欣岩里) 유적 출토토기는 구멍무늬장식의 역삼동식토기와 겹 아가리의 가락동식토기가 공반되거나 두 형식의 토기 속성이 복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
2524 숫돌 한국(韓國)
석(石)
안산암(安山岩)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석공(石工) 지석(砥石)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16 / 000
상세설명 [정의]
숫돌은 간석기(磨製石器)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의 돌 연모 제작기술은 갈기수법에 의한 간석기 제작기술의 보급과 발전으로 특징 지워지는데 숫돌은 이러한 기술의 보급을 직접 증명해주는 중요한 두고 가운데 하나이다. 숫돌은 주로 사암과 니암 계통의 돌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숫돌이 갈아야 하는 대상의 돌감보다 더 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 돌감을 갈 때 숫돌도 함께 갈려야허며 이 때 생기는 돌가루가 마찰력을 높여주어 갈아야할 대상이 더 잘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숫돌의 모양은 장방형(長方形), 원형(圓形), 타원형(?圓形) 등 매우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도구의 제작 과정과 방법에 따라 입자가 거친 숫돌, 중간 숫돌, 그리고 입자가 곱고 미세한 완성용 숫돌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도구에 따라 숫돌의 용도가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의 사용방법은 대개 돌감을 숫돌 위에 올려놓고 위↔아래, 오른쪽↔왼쪽 또는 원운동을 하면서 가는데 일부 작은 돌연모의 완성단계 또는 끝 부분의 날·모를 세울 때에는 돌감 위에 작은 숫돌을 대고 움직여 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숫돌은 반드시 간석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숫돌의 윗면에서 발견되는 홈줄자국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데 이러한 자국은 치레걸이용 구슬을 만들기 위해 원통형의 옥을 갈았던 흔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숫돌은 집자리 또는 그와 관련된 생활유적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으며 그 존속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가지 지속되었다. 이 숫돌은 회갈색의 숫돌이다. 넓은 한면을 사용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불을 먹어서 조각난 것을 복원하였다. 바닥면의 표면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으며 부채꼴의 형태이다.
2523 숫돌 한국(韓國)
석(石)
안산암(安山岩)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석공(石工) 지석(砥石)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15 / 000
상세설명 [정의]
숫돌은 간석기(磨製石器)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의 돌 연모 제작기술은 갈기수법에 의한 간석기 제작기술의 보급과 발전으로 특징 지워지는데 숫돌은 이러한 기술의 보급을 직접 증명해주는 중요한 두고 가운데 하나이다. 숫돌은 주로 사암과 니암 계통의 돌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숫돌이 갈아야 하는 대상의 돌감보다 더 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 돌감을 갈 때 숫돌도 함께 갈려야허며 이 때 생기는 돌가루가 마찰력을 높여주어 갈아야할 대상이 더 잘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숫돌의 모양은 장방형(長方形), 원형(圓形), 타원형(?圓形) 등 매우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도구의 제작 과정과 방법에 따라 입자가 거친 숫돌, 중간 숫돌, 그리고 입자가 곱고 미세한 완성용 숫돌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도구에 따라 숫돌의 용도가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의 사용방법은 대개 돌감을 숫돌 위에 올려놓고 위↔아래, 오른쪽↔왼쪽 또는 원운동을 하면서 가는데 일부 작은 돌연모의 완성단계 또는 끝 부분의 날·모를 세울 때에는 돌감 위에 작은 숫돌을 대고 움직여 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숫돌은 반드시 간석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숫돌의 윗면에서 발견되는 홈줄자국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데 이러한 자국은 치레걸이용 구슬을 만들기 위해 원통형의 옥을 갈았던 흔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숫돌은 집자리 또는 그와 관련된 생활유적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으며 그 존속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가지 지속되었다. 이 숫돌은 회흑색의 숫돌이다. 넓은 두면만을 사용하였으며 경사져있다. 두꺼운쪽은 면이 떨어져나갔다.
2522 숫돌 한국(韓國)
석(石)
안산암(安山岩)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석공(石工) 지석(砥石)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14 / 000
상세설명 [정의]
숫돌은 간석기(磨製石器)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의 돌 연모 제작기술은 갈기수법에 의한 간석기 제작기술의 보급과 발전으로 특징 지워지는데 숫돌은 이러한 기술의 보급을 직접 증명해주는 중요한 두고 가운데 하나이다. 숫돌은 주로 사암과 니암 계통의 돌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숫돌이 갈아야 하는 대상의 돌감보다 더 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 돌감을 갈 때 숫돌도 함께 갈려야허며 이 때 생기는 돌가루가 마찰력을 높여주어 갈아야할 대상이 더 잘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숫돌의 모양은 장방형(長方形), 원형(圓形), 타원형(?圓形) 등 매우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도구의 제작 과정과 방법에 따라 입자가 거친 숫돌, 중간 숫돌, 그리고 입자가 곱고 미세한 완성용 숫돌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도구에 따라 숫돌의 용도가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의 사용방법은 대개 돌감을 숫돌 위에 올려놓고 위↔아래, 오른쪽↔왼쪽 또는 원운동을 하면서 가는데 일부 작은 돌연모의 완성단계 또는 끝 부분의 날·모를 세울 때에는 돌감 위에 작은 숫돌을 대고 움직여 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숫돌은 반드시 간석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숫돌의 윗면에서 발견되는 홈줄자국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데 이러한 자국은 치레걸이용 구슬을 만들기 위해 원통형의 옥을 갈았던 흔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숫돌은 집자리 또는 그와 관련된 생활유적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으며 그 존속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가지 지속되었다. 이 숫돌은 회갈색의 숫돌이다. 한면만을 사용하였으며 바닥면쪽과 한쪽면은 인위적으로 떨어져 나갔다. 한쪽으로 경사졌으며 떨어져 나간면은 회백색을 띤다.
2521 숫돌 한국(韓國)
석(石)
안산암(安山岩)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석공(石工) 지석(砥石)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13 / 000
상세설명 [정의]
숫돌은 간석기(磨製石器)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의 돌 연모 제작기술은 갈기수법에 의한 간석기 제작기술의 보급과 발전으로 특징 지워지는데 숫돌은 이러한 기술의 보급을 직접 증명해주는 중요한 두고 가운데 하나이다. 숫돌은 주로 사암과 니암 계통의 돌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숫돌이 갈아야 하는 대상의 돌감보다 더 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 돌감을 갈 때 숫돌도 함께 갈려야허며 이 때 생기는 돌가루가 마찰력을 높여주어 갈아야할 대상이 더 잘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숫돌의 모양은 장방형(長方形), 원형(圓形), 타원형(?圓形) 등 매우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도구의 제작 과정과 방법에 따라 입자가 거친 숫돌, 중간 숫돌, 그리고 입자가 곱고 미세한 완성용 숫돌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도구에 따라 숫돌의 용도가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의 사용방법은 대개 돌감을 숫돌 위에 올려놓고 위↔아래, 오른쪽↔왼쪽 또는 원운동을 하면서 가는데 일부 작은 돌연모의 완성단계 또는 끝 부분의 날·모를 세울 때에는 돌감 위에 작은 숫돌을 대고 움직여 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숫돌은 반드시 간석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숫돌의 윗면에서 발견되는 홈줄자국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데 이러한 자국은 치레걸이용 구슬을 만들기 위해 원통형의 옥을 갈았던 흔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숫돌은 집자리 또는 그와 관련된 생활유적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으며 그 존속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가지 지속되었다. 이 숫돌은 회흑색의 숫돌이다. 장방형으로 세면을 사용하였다. 일부 표면의 석재가 떨어져 나갔으며 장축의 높낮이가 틀려 경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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