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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395 초당집(草堂集) 한국(韓國)
지(紙)

용도기능 문화예술(文化藝術) 문헌(文獻) 문집류(文集類) 문집류(文集類)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고도서(古圖書)
유물번호 003507 / 000
상세설명 [정의]
초당 조정룡(草堂 曺挺龍 1694~1769)의 문집(文集).
[내용]
조정룡(曺挺龍)이 저술하고 조병문(曺秉文)이 편찬하였다. 완산(完山). 유필영(李必永)이 서(序) 하였으며, 1922년 문경산양(聞慶山陽)에서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었으며, 1~2권 1책만 소장하고 있는데 시(詩), 만사(輓詞), 제문(祭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1394 좌전(左傳) 한국(韓國)
지(紙)

용도기능 문화예술(文化藝術) 문헌(文獻) 사서(史書) 기타(其他)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고도서(古圖書)
유물번호 003506 / 000
상세설명 [내용]
좌전(左傳)은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좌구명(左丘明)이 해석한 책으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좌씨춘추(左氏春秋)》《좌씨전(左氏傳)》이라고도 한다. BC 722~ BC 481년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춘추》와는 성질이 다른 별개의 저서로서, 《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과 함께 3전(三傳)의 하나이다. 원본은 전국시대에 작성되었으나, 지금 전하는 것은 전한(前漢) 말기 유흠(劉歆) 일파가 편찬한 것이다. 다른 2전(二傳)이 경문(經文)의 사구(辭句)에 대한 필법을 설명한 것에 비하여 이 책은 독립된 역사적인 이야기와 문장의 교묘함 및 인물묘사의 정확이라는 점 등에서 문학작품으로도 뛰어나고 고전문의 모범이 된다. 본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좌전(左傳)은 10책 1질로 구성되었다. 본문에 적색으로 표시된 표점은 10책 말미에 “신묘삼월일여몽덕장점우창주와(辛卯三月一與夢德?點于滄洲窩)”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에 적색으로 표시된 표점을 신묘년 창주와에서 기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판본은 활자본이나 번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1393 씨아(攪車)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염직(染織) 씨아(씨아)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362 / 000
상세설명 [정의]
목화씨를 빼는 데 쓰는 기구.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북학의≫에는 '攪車(각차)'로 적혀 있다. 우리말 이름은 지역에 따라 '쐐(인천광역시 백령)·쐐기·씨앗이(충청도·경상도·전라도)·쌔(강원도 강릉)'로 불리며 '쐐·쒸야·타리개'라고도 한다. 모양은 토막나무에 두개의 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둥근 나무 두개를 맞물려 끼운 형태이다. 이를 손잡이에 연결하여 돌리면 톱니처럼 되어 맞물려 돌아가므로 목화 속의 씨가 빠진다. 몸채에는 긴 나무쪽을 박고 이를 사람이 깔고 앉아 고정시킨다. 씨아를 이용하면 여자 한 사람이 하루에 목화 두말의 씨를 뺀다. 무게는 5.2㎏ 내외이다. 씨아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명칭이 있다. ① 가락:톱니처럼 마주 돌아가게 된 위의 나무, ② 귀:두개의 나무가 마주 돌도록 톱니처럼 파내어 만든 부분, ③ 장가락:톱니처럼 마주 돌아가게 된 아래 나무, ④ 씨아손:씨아를 돌리는 손잡이, ⑤ 쐐기:가락과 장가락이 마주 붙어 돌아가도록 밑에서 받치는 나무.
1392 토기항아리(土器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302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회청색의 경질토기이다. 구연(口緣)은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으며, 목(頸部)는 약간 외반(外反)되었고, 동체(胴體)는 어깨(肩部)에서부터 벌어져 내려와 동체(胴體) 중앙(中央)에서 최대경(最大徑)을 이루고, 다시 좁아들어 저부(底部)를 형성하는 항아리이다. 기면(器面)에 타날수법(打捺手法)에 의한 승석문(繩蓆文)이 드문드문 찍혀 있고, 목(頸部)의 한쪽부분에 「×」기호가 새겨져 있다.
1391 명문암막새(銘文平瓦當)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주(住) 건축부재(建築部材) 지붕재(지붕재) 암막새(암막새)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294 / 000
상세설명 [정의]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기와는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국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적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 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暑)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이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다. 암막새는 암키와로 형성된 기왓골의 끝에 막새부(드림새)를 접합시킨 기화를 말한다. 삼국통일 이후 유행하였으며, 수막새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당초문(唐草文)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보상화문(寶相華文)을 비롯한 각종 동식물문양이 새겨져 있다. 문양은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당초문 등의 덩굴문양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기와는 강릉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암막새기와로 하단부가 밑으로 늘어진 역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막새면에 종선(從線)을 그어 여러 면으로 구획한 후 '天啓五年正三月' 이라는 제작시기와 불분명한 시주자의 인명(人名) 등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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