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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385 백자소접(白磁小?)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보시기(보시기)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3285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소접은 구연(口緣)은 외반되었고, 구연(口緣)에서 굽에 이르는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내면(內面)에 내저원(內底圓)이 있고, 내외면(內外面) 모두 무문(無文)으로, 외면(外面)에 물레 성형흔적이 남아있다. 유색은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빙렬(氷裂)이 있고, 외면(外面)의 일부 유(釉)가 산화 변색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내저면(內底面)에 잡물이 묻어있고, 기형(器形)이 약간 일그러져 있다.
1384 백자소접(白磁小?)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보시기(보시기)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3284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소접은 구연(口緣)은 외반되었고, 구연에서 굽에 이르는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내외면 모두 무문(無文)이고,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유색은 담청(淡靑)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나 빙렬(氷裂)이 있고 외면(外面)에 부분적으로 유(釉)가 몰려 있다. 내외면의 일부 유가 산화·변색(變色)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1383 백자접시(白磁?匙)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3283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접시는 구연부(口緣部)는 완만하게 외반되었고, 외측면선(外側面線)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접시이다. 내저면(內底面)에 모래를 받치고 포개 구운 흔적이 있다. 유(釉)는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를 시유하였고, 외측면(外側面)에 물레 돌린 흔적이 있다. 굽은 다리굽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1382 백자발(白磁鉢)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발(鉢)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3282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발은 구연(口緣)은 외반되었고, 그 아래에 횡(橫)으로 골이 파여 있다.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내외면(內外面) 모두 무문(無文)이고,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유색은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나, 빙렬(氷裂)이 있고, 외면(外面)에 부분적으로 유(釉)가 몰려있다. 내외면(內外面)의 일부가 산화 변색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1381 백자병(白磁甁)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3281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병은 짧은 목에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벌어져 동체(胴體) 하부(下部)에서 풍만하게 팽창되었다가 다시 좁혀져 세워진 병이다. 기면(器面)은 무문(無文)이고,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회청색을 띠는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빙렬(氷裂)이 있고, 산화 변색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내화토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목과 어개부분에 다른 기면(器面)의 편이 묻어 있고, 구연(口緣)이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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