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유물검색
게시물 검색

2675 개의 유물이 검색되었습니다.

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380 토기항아리(土器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278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구부(口部)가 낮고 넓게 벌어져 세워지고, 짧은 목에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벌어져 동체(胴體) 상부(上部)에서 최대로 벌어졌다 다시 서서히 좁아져 세워진 항아리이다. 기면(器面)에는 물레 성형 흔적과 타날기법에 의한 돗자리무늬(格子門)가 남아있다. 회청색을 띠는 경질토기로, 바닥은 평저(平底)이다.
1379 옥람한일동유묵(玉藍韓溢東遺墨) 한국(韓國)
지(紙)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장식용구(裝飾用具) 병풍(屛風) 문화예술(文化藝術) 서화(書畵) 글씨(글씨) 일반서예(一般書藝)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일반회화(一般繪畵)
유물번호 003276 / 000
상세설명 [정의]
바람을 막거나 공간을 가리는 가리기 위하여, 또는 장식용으로 방안에 치는 물건. 실용적인 면뿐 아니라 벽면을 장식하는 장식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주술적인 염원을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기원]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식으로 그려 뒷벽을 장식하였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삼국사기≫에 신라시대의 신분제도를 나타낸 항목에 진골과 육두품은 병풍에 수(繡)를 금한다는 조항이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관청의 사면에 꽃을 수놓은 병풍을 쳐놓았다는 기록과 묵화병풍을 하인에게 선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은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병풍은 장방형으로 짠 나무틀에 종이를 바르고 종이·비단 또는 삼베에 그려진 그림이나 글씨·자수 등을 붙이고 그 폭과 폭은 돌쩌귀로 접합시켜 접었다 폈다 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든다. 2폭에서 12폭까지 짝수로 구성되어 있으나 12폭은 다루기에 편하도록 둘로 나누어 6폭씩 만들기도 한다. 폭은 36∼45㎝이며 높이는 60∼180㎝ 정도가 일반적이며 장식과 용도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지고 있다. 병풍의 종류로는 2폭의 것은 가리개 혹은 곡병(曲屛)이라고 하며, 머리맡에 치는 얕은 병풍은 머리병풍 또는 침병(枕屛)이라고 한다. 한 주제의 그림만으로 꾸민 것은 일본에서 전해진 형식이라고 하여 왜장병(倭粧屛)이라고 부른다. 여러 가지 주제의 작은 그림들 또는 글씨·탁본·도장 등을 전면에 붙여서 꾸민 것은 백납병(百衲屛)이라고 하며, 수를 놓은 것은 수병, 온판[全板]으로 꾸민 것은 삽병(揷屛)이라고 한다. 병풍은 표현되는 주제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① 일월병(日月屛) : 해와 달에 십장생문을 곁들여 당채로 그린 것으로 궁중에서 어좌인 용상 뒤에 펴놓는다. 일월병은 임금이 해와 달과 동격임을 상징하는 병풍으로 해와 달을 놋쇠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도 있다. ② 고정동수병(古鼎董繡屛) : 고대의 청동으로 만든 솥이나 종을 검정 비단에 금사·은사·황금색 꼰사 등으로 수를 놓은 것인데 주로 도서관이나 황제의 침실에 사용하였다. ③ 장생병(長生屛) : 장생하는 동식물 열 가지(사슴·학·산·거북·물·구름·소나무·대나무·불로초·해)를 주제로 하여 만든 병풍이다. 궁중에서는 선왕들의 어진을 모시고 가례를 치르는 선원전에서 사용하였고, 민간에서는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부모님 방에 펴놓았다. ④ 백동자병풍(百童子屛風) : 어린이들의 물놀이·수탉싸움·북 치는 장면·전쟁놀이 등을 표현한 것이다. 아기를 못 낳는 부인들이 일종의 주술로서 잠자리에 이 병풍을 펴고 자면서 자손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⑤ 신선도병풍 : 도교에서 나온 사상으로 신선·천도·사슴을 주제로 삼았다. 천도는 신선을 상징하며 신선은 불멸장수를 의미하였다. 사슴 중에서도 백사슴은 천년에 한 마리씩 나온다는 설화에서, 좋은 상징으로 삼아 많이 다루었다. 궁중에서는 왕세자·왕자가 태어났을 때나 돌 때 사용하였다. ⑥ 글씨병풍 : 명언이나 시구, 명필가의 글씨를 붙인 병풍. 글씨병풍은 당나라 때 정치가인 방헌령이 집안을 다스리는 데는 법도가 있어야 하고 권세가 있으면 사치하고 교만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훈이나 계서(戒書)를 적은 병풍을 1구씩 비치하여 좌우명으로 삼게 한 데
1378 손잡이달린잔(把手附壺形杯)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275 / 000
상세설명 [정의]
액체를 담는 작은 그릇이다.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부터 토기잔이 만들어지면서 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시대를 거쳐 가야·신라·백제 및 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잔이 시대적인 특징을 띠고 만들어져 공예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잔의 구성은 뚜껑의 있고 없음, 굽의 있고 없음, 손잡이의 있고 없음으로 이루어지며 그 밖에 따로 잔대(盞臺, 盞托, 托盤)가 갖추어지기도 한다. 잔의 크기는 대·중·소(깍정이)가 있으며 생김새는 여러가지로 통형(筒形), 보시기형(鉢形), 바리기형(?形), 상형(象形), 이형(異形) 등의 형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통형에는 원통형·사각통형·사각통의 모를 죽인 모죽임형이 있고, 바리기형에는 구부(口部)가 바로 전 직바리형과 안으로 옥은 오목바리형이, 바라기형에는 입이 밖으로 살짝 휘어진 형과 매우 심하게 휘어진 형이 있다. 상형에는 연꽃 같은 꽃송이형, 짐승의 뿔꼴인 뿔잔형(角?形)과 팽이꼴을 한 짧고 통통한 뿔잔형이 있고, 바가지 또는 복숭아형 및 안이 깊고 울이 높은 이른바 컵형의 아랫도리가 동그스름한 종형(鍾形) 등이 있다. 이형으로는 뿔잔 끝에 말·사슴 등을 만든 동물형, 잔 둘이 나란히 붙은 형, 다섯개가 붙은 등잔, 잔 아랫도리가 방울형인 꼴, 그리고 받침 위에 짐승을 두고 잔(角杯)을 올려놓는 등의 이형받침들도 보인다. 이밖에도 뿔잔처럼 잔대가 같이 갖추어진 반잔(盤盞)도 있다. 잔의 손잡이는 외손잡이와 양손잡이(兩耳)로 나타내며 생김새는 고리손잡이와 고사리꼴의 서린손잡이가 있다. 굽은 낮거나 높은 통굽이면서 원통형과, 이른바 고배(高杯)의 굽인 밑이 벌어진 나팔형이 있고, 다리굽에는 삼족형(三足形)이 보인다. 굽이 없는 잔은 거의가 납작바닥(平底)아너 원저, 원뿔형(圓錘形)도 있다. 잔의 장식은 겉에 갖은 무늬가 새겨지는 것 외에도 영락(瓔珞)이 달리거나 뚜껑 등에 여러가지 토우(土偶)들이 장식되며, 굽에는 원형·삼각형 또는 직사각형으로 뚫린 구멍(透孔) 치레도 있다. 이 토기는 둥근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세로로 달린 잔이다. 기형(器形)은 편평한 바닥에서 서서히 벌어져 올라가 동체(胴體) 하부(下部)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다시 서서히 좁아들어가 동체(胴體) 상부(上部)에서 직립하여 구연(口緣)이 이른다. 회청색의 경질토기이며, 동체(胴體)의 상부(上部)에 한 줄의 양각선대(陽刻線帶)를 돌렸고, 기면(器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1377 굽다리접시(高杯)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제례(祭禮) 제기(祭器)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274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회청색의 경질토기로, 뚜껑받이는 내경하고, 뚜껑받이턱은 돌출하였다. 굽다리는 나팔 형으로 중간에 2조로 돌대(突帶)를 돌려 상?하단을 구획하고 각각 4개의 굽구멍을 엇갈리게 배치하였다. 굽 밑부분은 각지게 내경한다.
1376 청자화형접시(靑磁花形?匙)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3273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장 고려적인 특징을 보이는 형태이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접시는 화형(花形)의 전이 있는 소형의 접시로, 내저(內底) 중앙(中央)에 화문(花文)이 시문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한 녹색을 띠는 청자유(靑磁釉)가 시유되었으나, 빙렬(氷裂)에 있고, 내외면(內外面) 유(釉)가 박리(剝離)되어 기면(器面)이 거친 편이다. 굽은 안굽의 형태이다.
처음  이전  251  252  253  254  255  256  257  258  259  260  다음  맨끝
(210-701) 강원 강릉시 범일로 579번길 24(내곡동) 전화 033) 649-7851 팩스 033) 64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