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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345 신틀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초고공(草藁工) 짚신틀(짚신틀)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854 / 000
상세설명 [정의]
미투리나 짚신 따위를 삼을 때에 신날을 거는 틀. '신틀(강원도 도계)·짚틀·미틀(경상남도 영산)·짚신틀' 등으로 불린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보통 대여섯개의 구멍이 뚫린 두툼한 각목에, 기둥 같은 발을 박고 이 몸체에 두개의 누운 다리를 박기도 하고 또 여러 개의 구멍이 난 널판대기를 앉을깨 형태로 몸체에 박기도 하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보통 짚신을 삼을 경우는 신날을 두개의 기둥에 걸고 중간을 모아 가는 새끼에 걸어서 허리띠에 찬다. 미투리의 경우는 세개의 기둥에 신날을 걸게 되므로 육날미투리라고도 한다. 신을 삼아 나가면서 끝이 날렵한 '신뻔장'으로 당겨서 조여가며 삼는다. 강원도 도계에서는 박달나무로 신틀을 만든다.
1344 여물구박(整木槽盆)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축산(畜産) 양우마(養牛馬) 소죽바가지(소죽바가지)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836 / 000
상세설명 [정의]
박으로 만든 다목적 그릇.
[역사]
우리 민족이 바가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랜 옛날부터이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신화라든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원효조(元曉條)>에 바가지를 두드려 악기로 썼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상원조(上元條)>에도 남녀 유아들이 겨울부터 파랑 ·빨강 ·노랑으로 물들인 호리병박을 차고 다니다가 정월 대보름 전야에 남몰래 길가에 버리면 액(厄)을 물리칠 수 있다 하여 차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고, 《흥부 놀부전》에서도 바가지를 신비적 존재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한국 가정의 필수용품으로서 쌀을 퍼내는 쌀바가지, 장독에 두고 쓰는 장조랑바가지, 물을 퍼내는 물바가지, 소의 먹이를 떠내는 쇠죽바가지 등 용도가 다양하다. 봄에 박씨를 뿌렸다가 가을에 박을 따서 만드는데, 반(半)으로 켜고 속을 파낸 다음, 삶아 다시 안팎을 깨끗이 긁어낸 후에 말려서 쓴다. 이 바가지는 여물죽을 푸는 데 쓰는 자루가 달린 바가지로 지방에 따라 여물박·여물바가지·남팍·쇠물박·소죽바가지라고도 한다. 소나 돼지의 먹이를 퍼담는 데 쓰인다. 예전에는 밤나무나 소나무로 만들어서 뒤틀리지 않게 솥에 삶아서 사용하였다.
1343 석간주병(石間?甁)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석간주(石間朱)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2792 / 000
상세설명 [정의]
석간주(石間?)란 붉은 산화철을 많이 포함한 빛이 붉은 흙으로, 석회암, 혈암 등이 분해된 돌 사이에서 나는 흙으로 주토(朱土), 적토(赤土) 등으로 불여진다. 이 산화철을 안료로 하여 백자의 태토 위에 시유하여 철색, 고동색빛 색깔을 내는 자기를 조선시대 18세기에는 '석간주'라고 하였다. 석간주 자기란 철채자기를 뜻하는 것으로 주로 백자 태토나 반자기질의 태토를 사용하여 제작되며, 기면 전체에 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발달과정/역사]
석간주 자기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철화백자, 철채백자가 많이 제작되는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비롯하여 18, 19세기에 널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동체에 8각 또는 10각의 면을 깎아 세우고 접시 모양의 뚜껑이 있는 전형적인 석간주라고 불려지는 단지들은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호남·영남 일대의 백자 가마터에서 백자와 함께 특별히 제작되었던 철채자기로 알려져 왔다. 단지모양의 몸체에 이처럼 다각으로 모를 깎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전반 광주의 금사리요에서 백자단지나 병 그리고 제기 등을 만든 데서 비롯하며, 이러한 다각의 단지는 19세기에 들어 병이나 제기, 단지 등에 더욱 확대되어 제작되며, 이러한 다각의 단지 외에도 다각 병, 술병, 작은 병, 단지, 주구(注口)가 달린 단지, 광구병 등에도 널리 사용되어 제작되기에 이르른다. 흑(갈)유 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반까지 오랜 기간 제작되었다. 대개 이들은 녹청자와 같은 가마(窯)에서 생산된 경우가 많아 어떤 것은 녹청자와 구별하기 어련운 것도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석간주 자기의 특색은, 다각의 단지의 경우 그 특이한 조형감각에 있으며, 동체를 모로 깎은 예리함과 다각이 주는 강건한 효과가 변형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접시 모양의 뚜껑이 잘 어울리며, 꿀이나 양념 등을 담아 주방에서 생활용에 긴요하게 사용되었으며, 병들의 경우도 기름이나, 간장, 술 등을 담는 데 요긴하게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석간주 자기의 굽다리는 특이하게 18세기 백자의 저부의 면과 굽 안바닥의 면이 같은 점이 주목되며, 태토는 반자기질이나 백자 태토를 사용하고 있다. 유색은 짙은 경우 흑색, 흑갈색을 띠거나, 옅은 경우 엿빛 색깔을 띠며, 일반적으로 산화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유약은 전면에 곱게 시유되거나 반점을 이루어 얼룩얼룩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병은 동체가 풍만하고 굽다리가 굽 안바닥으로 깊어져 19~20세기의 기형을 따르고 있다. 석간주 자기는 철채자기라고 할 수 있으며, 꿀이나 양념, 기름이나 술 등을 담아 사용하던 생활용의 자기로서 17세기 후반부터 철화백자와 함께 만들어졌으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걸쳐 석간주 자기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다각의 단지와 다각의 병 등이 석간주 자기로 만들어져 널리 주방영의 생활용 자기로 사용되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르렀던 조선 후기의 특수한 자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석간주병은 구연(口緣)은 나팔처럼 넓게 벌어지고, 가늘고 긴 목, 어깨에서 벌어져 구형(球形)의 둥근 동체(胴體)를 이룬 풍만한 병이며, 기면(器面)에는 물레의 회전 자국이 나있다. 전면에 흑갈색의 석간주 유약이 시유되었으나, 흘러내려 표면색이 짙고 엷다. 굽은 안굽의 형태로 접지면의 유(釉)를 훑어낸 후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구연(口緣)이 일부 결실되었다.
1342 빗접(梳匣)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화장구(化粧具) 빗접(빗접)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778 / 000
상세설명 [정의]
머리 손질에 필요한 빗·빗솔·빗치개 등을 넣어 두는 그릇.
[개념]
빗·빗솔·빗치개·가리마·꼬챙이·뒤꽂이·동곳 등을 넣어 두는 제구(諸具)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소첩(梳貼)은 흔히 기름에 결은 종이제품을 가리키며, 목제품에 대해서는 소갑(梳匣)이라 한다. 유지(油紙) 빗접을 꽂아서 벽에 걸어두거나 혹은 빗접 자체가 고비 겸용으로 만들어진 것을 빗접고비라 한다. ≪산림경제≫에서는 여성의 혼수 가운데 소첩과 장함(粧函)을 별개로 다루었는데, 이는 참빗·얼레빗·빗솔·빗치개 등을 넣어두는 빗접과 분·기름·밀·거울 등을 수장하는 함이 구분되어 있었음을 말한다. ≪임원경제지≫에서 소개한 경대는 바로 장함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점이 오늘날의 경대가 빗접과 장함의 기능을 함께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첩의 용지는 장지를 이용하거나 창호지라도 여러 겹 부해서 기름에 결어 만든다. 소첩은 가로 세로를 각각 세번씩 접어서 그 접은 자국이 '井'자를 나타낸다. 크기는 마음대로 한다. 목제의 소갑은 작게는 목침만 하지만, 부녀자 소용의 경우에는 대개 그보다 커서 1척에 달하며, 운각의 장식적인 다리를 붙이기도 한다. 갑을 아래위 두 칸으로 하여 반닫이 서랍을 달고, 위 서랍에는 빗과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두는 주머니 등을 넣고 아래 서랍에는 분과 기름을 넣는다. 부녀자용 소갑은 주칠(朱漆 : 붉은 칠)을 하지만 남자용 오동나무 소갑은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침향색을 낸다. 연갑(硯匣) 모양으로 만든 소갑은 뚜껑에 첩지(貼紙)를 붙여놓고 황동이나 백통 고리를 달아 칠을 하거나 자개를 박아 호사스럽게 꾸민다. 빗접고비는 가는 나무 오리를 장방형으로 짜서 앞뒤에 종이를 바르고 앞쪽에 다시 두꺼운 종이로 틈이 뜨게 붙여 그 틈에 빗접을 꽂게 되어 있다. 이 빗접은 천판과 받침다리를 만들고 위에 한칸, 아래 한칸, 오른쪽에 한칸의 서랍은 짜넣었다. 아래, 위의 서랍은 활형손잡이(弓形擧金) 오른쪽 한 칸의 서랍은 연주형 꼭주로 여닫게 되어 있다.
1341 설피(雪皮)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의(衣) 신발(신발) 혜/리(鞋/履) 설피(설피)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754 / 000
상세설명 [정의]
눈이 많은 고장의 주민들이 겨울철에 신바닥에 덧대어 신는 물건.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살피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신으면 눈에 깊어도 빠지지 않으며 비탈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설피는 10년쯤 자란 다래덤불이나 노간주나무 또는 물푸레나무로 만든다. 다래덤불이나 노간주나무는 껍질을 벗겨 다듬은 다음 뜨거운 물에 넣고 천천히 힘을 주어가며 타원형으로 구부린다. 물푸레나무는 워낙 악지가 세기 때문에 불에 쬐어가며 휘어야 한다. 한번 돌려서 겹쳐지는 부분에는 다래덤불을 가로 잘라서 위아래로 가로 매는데 이것이 설피의 바탕이 되는 셈이다. 다래덤불보다 더 좋은 것은 가늘게 잘라낸 곰가죽 끈이다. 이것은 눈이 들러붙지 않기 때문이다. 설피는 산간지방 주민들뿐만 아니라 겨울철 사냥꾼에게도 필수적이다. 이들은 사냥감을 산 뒤쪽에서 아래로 내려 몰 때에는 썰매를 타지만, 먼 거리까지 짐승을 뒤쫓거나 비탈을 오를 때에는 이것을 신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겨울에 산에 가는 등산가들도 스키로 움직이기 어려운 곳에서 설피를 이용하는 일이 많다. 이들의 설피는 테니스라켓 모양으로 볼이 넓고 크며 가운데에는 그물처럼 촘촘한 망을 붙였다. 굴밤나무나 참나무를 깎아 만든 발톱을 바닥 양쪽에 끼운다. 이 발톱은 미끄러지는 것을 막는 제동장치이다. 산간지방의 설피는 볼이 좁고(15㎝) 길이도 짧은 편이어서 걷기에 편리하다. 볼이 크고 넓은 것은 안정성이 높은 반면, 걸음을 벌려가며 '之'자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비능률적이다. 한편, 오늘날의 장화처럼 새끼로 뜬 것을 설피라 하여 신고 다니기도 하였다. 짚신에 설피를 신을 때에는 감발을 친 부분이 얼지 않도록 하려고 살이 닿는 데를 떡갈잎으로 한번 싸 감았다. 예전 설피가 없는 곳에서는 굵은 철사 같은 것으로 뾰족한 끝이 땅에 박히도록 만든 사갈을 신었으며, 높은 산에 오를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굽에 못을 박은 나막신도 사갈이라 불렀다. 이들은 서양의 아이젠을 닮은 것이다. 설피는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북극지방의 에스키모와 북미대륙의 원주민들도 이용하였다. 특히 이들 원주민의 설피는 크고 둥글며 바닥 그물이 촘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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