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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280 태평소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문화예술(文化藝術) 음악(音樂) 악기(樂器) 태평소(太平簫)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515 / 000
상세설명 [정의]
국악기 중 목부(木部)에 속하는 관악기.
[개요]
목관악기로 쇄납[哨君]또는 호적(胡笛)이라고도 하며, 속칭 날라리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부터 ≪국조오례의≫의 전정고취(殿庭鼓吹)와 ≪세조실록≫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정대업(定大業)〉에서 소무(昭武)·분웅(奮雄)·영관(永觀)장에도 썼고, 그 뒤에는 취타(吹打)·농악, 불가(佛家)의 재(齋)에도 연주되어 오늘에 이른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태평소를 만드는 법은 오매(烏梅)·산유자(山柚子)·대추나무·황상(黃桑)·황양(黃楊) 등 단단한 나무를 쓰는데, 관의 길이는 30㎝ 못되게 하여 위는 좁고 차차 퍼져 아래를 굵게 한다. 지공(指孔)은 모두 8공이고, 그 중에서 제2공은 뒷면에 있다. 갈대로 만든 작은 혀[舌]를 동구(銅口)에 꽂고, 끝은 나발 모양의 동팔랑(銅八郎)이 달려 확성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이 악기로 전라도 지방의 시나위를 불었던 사람은 방태진(方泰鎭)과 한일섭(韓一燮)이다. 방태진은 1950년대 후반부터 여성국극단의 악사로 따라다니며 국극의 장면이나 중요한 대목을 태평소의 즉흥가락으로 옮기기 시작하여 그 나름대로 중심가락을 만들고 서용석(徐龍錫)에게 전하여 주었다. 방태진의 시나위는 굿거리·자진모리·동살푸리·휘모리로 짜여져 있고, 가락은 그때그때마다 즉흥가락이며 몇 개의 대표적인 가락들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한편 한일섭의 태평소 시나위는 그 자신의 아쟁이나 판소리의 가락들을 태평소에 옮겨 불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한다. 그의 가락은 박종선(朴鍾善)·김동진(金東振) 등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는데, 역시 대표적인 가락들은 몇 가락뿐이고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주장단은 굿거리와 자진모리이다. 방태진의 가락이 경쾌하며 엇먹고 나오는 가락이 많고 리듬을 타는 시나위라면, 한일섭의 가락은 한음 한음을 길게 끌며 선적(線的)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시나위라 하겠다.
1279 나무기러기 (木雁)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혼례(婚禮) 전/목안(奠/木雁)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2500 / 000
상세설명 [정의]
전통혼례에 사용되는 나무로 만들어 채색한 기러기의 모형물.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혼례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의 하나이다. 한자어로는 목안(木雁)이라고 한다. 나무로 만든 기러기라 하지만 실제로는 오리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신랑 일행이 혼례를 올리러 신부집으로 향할 때, 목기러기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안부(雁夫) 또는 기럭아비라 한다. 신랑이 신부집 안마당에 준비한 초례청(醮禮廳)에 사모관대로 정장을 하고 들어서면 신부집에서는 전안청(奠雁廳)이라 하여 낮은 상 위에 붉은 보를 깔고 뒤에 병풍을 쳐둔다. 신랑이 이곳에 와서 무릎을 꿇고 앉으면 기럭아비가 기러기를 신랑에게 전한다. 신랑은 이것을 받아 상 위에 놓고 이것을 향하여 절을 두 번 한다. 이상과 같은 절차를 전안지례(奠雁之禮)라 한다. 이것은 남자가 부인을 맞아 기러기와 같이 백년해로를 하고 살기를 맹서하는 것이다. 기러기는 암놈과 수놈이 한번 교접하면 평생동안 다른 것과 교접하지 않고 한 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따라 죽는다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믿었다. 따라서, 전안지례는 혼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남자가 하늘에 부부되기를 맹세하는 의례인 것이다. 전안지례를 소례(小禮)라고도 한다. 전안지례에 이어 거행되는 교배지례(交拜之禮)·합근지례(合胱之禮)를 대례상(大禮床) 앞에서 거행하기 때문에 이 두 의례를 합하여 대례라 한다.
1278 백자완(白磁?)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완(?)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2497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완은 구연(口緣)은 외반되었고, 구연(口緣)에서 굽에 이르는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내외면(內外面) 모두 무문(無文)이며, 외면(外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굽과 굽 주위를 제외한 전면에 시유되었으나, 빙렬(氷裂)이 나있고, 외면(外面) 일부가 산화 변색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내면(內面) 중앙에 모래를 받치고 포개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1277 백자소접(白磁小?)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보시기(보시기)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2496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소접은 구연(口緣)은 외반되었고, 구연(口緣)에서 굽에 이르는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내면(內面) 중앙(中央)에 내저원(內底圓)이 있고, 내외면(內外面) 모두 무문(無文)으로,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있다.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빙렬(氷裂)이 나있고, 내외면(內外面)의 일부 유(釉)가 산화 변색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내저면(內底面)에 모래 부스러기가 묻어있다. 구연(口緣)이 약간 결실되었다.
1276 백자접시(白磁?匙)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2495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접시는 구연부(口緣部)는 완만하게 외반되었고, 외측면선(外側面線)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접시이다. 내저면(內底面)에 음각선대(陰刻線帶)를 돌렸고, 내저(內底)에는 모래를 받치고 포개 구운 흔적이 있다. 유(釉)는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를 시유하였고, 물레를 돌린 흔적이 있다. 굽은 다리굽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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