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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2510 백자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10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편은 남아있는 형태로 보아 대접으로 굽지름보다 좁은 내저원각을 하고 있다. 내저면에서 완만한 곡선을 이룬다. 굽은 수직굽을 하고 접지면은 평편한 상태이다. 유백색의 유조를 띠며 굽을 잡고 유약에 담근 듯한 시유를 보인다. 4개의 비짐눈받침 흔적을 보인다.

2509 백자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09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편은 남아있는 형태로 보아 대접으로 여겨진다. 유백색의 유조를 띤다. 넓은 내저원각(內底圓角)을 하고 내저면으로부터 완만히 올라가는 형태이다. 굽은 대마디굽을 하고 있으며 접지면은 넓으나 사선으로 처리하였다. 4개의 비짐눈 흔적이 보인다. 기벽 외부 일부와 굽 안쪽은 시유하지 않았다.
2508 백자접시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접시(접시)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08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 주류를 이룬다. 그 외에 청자와 마찬가지로 상감백자, 철화백자 등의 종류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자는 청자보다 더 순수한(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태토인 백토(高嶺土)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백자접시는 연한 청록색의 유조로 처리한 접시편이다. 넓은 내저원각(內底圓角)을 하고 평편한 내저면에서 완만한 사상방(斜上方)으로 올라가다 구연부에서 약간 외반된 형태이다. 내저 바닥에서는 모래 받침이나 비짐눈이 확인되지 않는다. 굽은 대마디굽이고 접지면이 넓다.
2507 연화문(蓮花文)숫막새(C)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주(住) 건축부재(建築部材) 지붕재(지붕재) 수막새(수막새)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07 / 000
상세설명 [정의]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기와는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국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적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 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暑)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의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다. 수막새는 수키와로 인해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막새부(드림새)를 접합시킨 기와이다. 막새부는 반원형·타원형인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원형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문양 역시 각종 당초·보상화·동물·귀면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연꽃 문양이다. 연꽃 문양의 막새는 중앙에 연자(蓮子)를 담고 있는 원형의 씨방(子房)을 중심으로 주변에 연꽃잎의 문양대를 돌렸다. 연꽃잎은 잎의 배치 양상에 따라 단판·복판·중판으로 구분된다. 씨방과 연꽃잎 사이에 수술을 표현하기도 하며, 각각의 꽃잎 중심부에 꽃모양의 자엽(子葉)을 넣기도 하고, 연꽃잎과 더불어 보상화나 당초문을 함께 표현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원의 가장자리는 테두리로서 주연(周緣)이라고 부른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주연에 구슬을 일정한 간격으로 연이어 배치해 놓은 무늬(連珠文)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수막새는 자방(子房)은 옴폭하게 결실되어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연판(蓮瓣)은 14엽(葉)으로 정돈되지 않고 투박한 상태로 볼록하게 처리되었다. 연판의 모양은 일정하지 않다. 주연(周緣)은 연판부보다 1단 올라선 모양으로 1.5㎝의 굵기이다. 0.95㎝의 연자(緣子)가 약 0.9~1.0㎝ 간격으로 4개가 확인되었다. 엷은 회청색으로 사립을 함유한 태토이다. 배면에는 손가락으로 밀어 물손질 한듯한 손지문이 확인되었다.
2506 연화문(蓮花文)숫막새(B)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주(住) 건축부재(建築部材) 지붕재(지붕재) 수막새(수막새)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06 / 000
상세설명 [정의]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기와는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국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적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 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暑)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의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다. 수막새는 수키와로 인해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막새부(드림새)를 접합시킨 기와이다. 막새부는 반원형·타원형인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원형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문양 역시 각종 당초·보상화·동물·귀면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연꽃 문양이다. 연꽃 문양의 막새는 중앙에 연자(蓮子)를 담고 있는 원형의 씨방(子房)을 중심으로 주변에 연꽃잎의 문양대를 돌렸다. 연꽃잎은 잎의 배치 양상에 따라 단판·복판·중판으로 구분된다. 씨방과 연꽃잎 사이에 수술을 표현하기도 하며, 각각의 꽃잎 중심부에 꽃모양의 자엽(子葉)을 넣기도 하고, 연꽃잎과 더불어 보상화나 당초문을 함께 표현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원의 가장자리는 테두리로서 주연(周緣)이라고 부른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주연에 구슬을 일정한 간격으로 연이어 배치해 놓은 무늬(連珠文)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수막새는 사립을 함유한 엷은 회청색의 태토로 정선하였으나 전체적으로 거친 편이다. 자방(子房)은 중앙 원권(圓圈)내에 두툼하면서 볼록하게 처리하였다. 연판(蓮瓣)은 8엽(葉)으로 연판과 연판 사이에 작은 소엽이 중첩되어 있다. 중앙부의 잎맥을 도톰하게 세우고 연단(蓮端)은 뾰족하게 처리하였다. 주록(周綠)은 1조의 돌선대(突線帶)로 간단하게 처리하였다. 돌대의 굵기는 0.25㎝이다. 배면에서 물손질 한듯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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