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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30 굽다리잔뚜껑(高杯蓋) 한국(韓國)
토제(土製)
연질(軟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202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뚜껑굽다리접시는 5세기에 들어서면서 크게 발전하면서 크게 발전하여 뚜껑없는굽다리접시보다 비중이 더욱 커진다. 신라와 가야의 토기 양식 분화는 주로 굽다리접시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이해기 쉬운데 특히 다리의 형태와 굽구멍의 모습이 서로 잘 대비된다. 신라와 가야 각처에서 발견되는 굽다리접시들은 각기 다채로운 특징을 보여준다. 가령 신라양식 분포권 내에서도 경주지역에서는 굽다리접시 뚜껑에 화려한 무늬가 들어가는가 하면 토우를 장식하기도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 뚜껑은 적갈색을 띠며 연질이다. 직립 외반된 구연부(口緣部)로부터 완만히 오므라들어 꼭지부와 접하고 있다. 꼭지는 둥근 모양으로 상부중앙(上部中央)이 움푹파였다. 기면(器面)은 회전 물손질하였다. 구연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129 굽다리접시(高杯)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제례(祭禮) 제기(祭器)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200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회색의 경질토기로 뚜껑받이는 약간 내경하고 뚜껑받이턱은 약간 돌출되었다. 굽다리는 나팔형으로 중간에 2줄의 돌대(突帶)가 형성되어 상·하단(上·下段)에 4개의 굽구멍(透孔)을 엇갈리게 배치하였으며, 굽다리 하단(下段)에 2줄의 돌대(突帶)를 돌렸다. 뚜껑받이와 굽밑부분이 약간 결실되었으나 완형이다.
128 두귀달린굽다리접시(兩耳附高杯)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9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회색의 경질토기로 뚜껑받이는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고 뚜껑받이턱은 약간 돌출되었다. 배신(杯身)에는 2개의 손잡이가 부착되었다. 굽다리는 나팔형으로 4개의 장방형(長方形) 굽구멍(透孔)을 배치하였고, 그 밑에 2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뚜껑받이가 약간 결실되었으나 거의 완형이다.
127 굽다리완(有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8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속이 깊은 반구형(半球形)의 배신(杯身)에 구연(口緣)은 약간 외반(外反)되었다. 굽다리는 나팔형태로 아래로 갈수록 벌어졌고 4개의 장방형(長方形) 굽구멍(透孔)을 뚫었다. 배신(杯身)의 중간부분에 두 줄, 한 줄의 양각선대(陽刻線帶)가 둘러져 있고 띠모양의 손잡이가 세로로 부착되어 있다. 회청색의 경질토기로 부분적으로 자연유가 입혀졌으며, 굽다리에 공기가 유입되어 있다. 기면(器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126 세귀달린굽다리잔(三耳附有臺盞)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7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회청색의 경질토기로 원통형(圓筒形)의 다리에는 2단(段)으로 구분되어 사각형의 구멍이 엇갈려 뚫려 있고, 몸체(胴體)에는 세로 띠모양의 고리가 3개 달려 있으며 중간부에 물결무늬(波狀文)가 2단으로 조밀하게 시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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