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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125 토기병(土器甁)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3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입(口緣)이 나팔처럼 벌어졌고 좁아진 목에 어깨로부터 벌어져 풍만한 동체(胴體)를 이루다가 좁아져 세워진 병이다. 기면(器面)은 짙은 회색으로 경질이다. 어깨에 1줄의 음각선(陰刻線)을 시문하였고, 어깨에서 동체 상부(上部)가 산화되었다. 기형(器形)이 고르지 못하다. 동체 하부(下部)에 균열이 약간 있다. 바닥은 평저(平底)이나 약간 이그러져 있다. 입술부(口脣部)가 약간 결실되었고,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124 굽다리긴목항아리(有臺長頸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2 / 000
상세설명 [정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후기(後期)에 영남지역 전역에 걸쳐서 츨토되고 있는 '신식와질토기(新式瓦質土器)'의 표지적(標識的)인 기종(器種)으로, 받침(臺)이 부착(附着)되어 있으며, 아가리(口緣) 부분이 유난히 벌어져서 '대구광구호(臺附廣口壺)'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긴목항아리의 조형(祖形)으로는 원삼국시대 중기에 표지적으로 출토되는 '고식와질토기(古式瓦質土器)' 기종인 쇠뿔손잡이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가 점차 받침이 붙게 되거나 그릇받침(器臺)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예는 김해 대성동 유적 주변 제1지구 13호묘 출토품과 영남지방 출토로 전하는 호림박물관 수장품을 들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울산 하대 유적 출토품이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하대 43호묘와 44호 묘의 출토품을 들 수 있는데, 44호묘에서는 쇠뿔손잡이항아리와 동반출토되어 어느 정도 빠른 시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굽다리 입곧은항아리(臺附直口壺)와 동반출토된 예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굽다리목곧은항이로 교체되며서 소멸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전체적인 기형(器形)을 입술과 목부(口頸部), 몸체부(胴體部), 다리(臺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목부분은 약간 벌어지면서 올라오다가 입술끝(口緣端)에 이르러 급하게 밖으로 벌어지며, 몸체는 역삼각형(逆三角形)·장동형(長胴形)·편구형(扁球形)의 모양을 이루고 있고, 다리는 나팔상(喇叭狀)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형 뚜껑(蓋)와 세트를 이루며 출토되는 예가 많다. 이 굽다리긴목항아리는 회흑색의 경질토기이다. 굽다리(臺部)는 직사각형(長方形)의 굽구멍(透孔)을 배치하였으며, 나팔형으로 벌어져 지면(地面)과 맞닿아 있다. 동부(胴部)는 저부(底部)로부터 벌어지면서 올라가 동부(胴部) 중앙(中央)에서 최대경(最大徑)을 이룬 뒤 오므라들어 목(頸部)과 만난다. 동부(胴部)의 어깨부분(肩部)에 두 줄의 물결무늬(波狀文)가 시문되었고, 그 아래로 한 줄의 음각선대(陰刻線帶)가 둘러져 있다. 목(頸部)운 약간 외반(外反)하며 구연(口緣)을 형성한다. 목(頸部)에는 두 줄의 양각선대(陽刻線帶)를 상하(上下)로 두르고, 그 사이에 물결무늬(波狀文)을 시문하였다. 목(頸部)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123 굽다리긴목항아리(有臺長頸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1 / 000
상세설명 [정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후기(後期)에 영남지역 전역에 걸쳐서 츨토되고 있는 '신식와질토기(新式瓦質土器)'의 표지적(標識的)인 기종(器種)으로, 받침(臺)이 부착(附着)되어 있으며, 아가리(口緣) 부분이 유난히 벌어져서 '대구광구호(臺附廣口壺)'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긴목항아리의 조형(祖形)으로는 원삼국시대 중기에 표지적으로 출토되는 '고식와질토기(古式瓦質土器)' 기종인 쇠뿔손잡이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가 점차 받침이 붙게 되거나 그릇받침(器臺)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예는 김해 대성동 유적 주변 제1지구 13호묘 출토품과 영남지방 출토로 전하는 호림박물관 수장품을 들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울산 하대 유적 출토품이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하대 43호묘와 44호 묘의 출토품을 들 수 있는데, 44호묘에서는 쇠뿔손잡이항아리와 동반출토되어 어느 정도 빠른 시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굽다리 입곧은항아리(臺附直口壺)와 동반출토된 예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굽다리목곧은항이로 교체되며서 소멸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전체적인 기형(器形)을 입술과 목부(口頸部), 몸체부(胴體部), 다리(臺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목부분은 약간 벌어지면서 올라오다가 입술끝(口緣端)에 이르러 급하게 밖으로 벌어지며, 몸체는 역삼각형(逆三角形)·장동형(長胴形)·편구형(扁球形)의 모양을 이루고 있고, 다리는 나팔상(喇叭狀)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형 뚜껑(蓋)와 세트를 이루며 출토되는 예가 많다. 이 굽다리긴목항아리는 구형(球形) 동체(胴體)에 구연부(口緣部)는 길게 직립(直立)하였으며 목(頸部) 중간과 하단(下段)애 1줄의 양각선(陽刻線)을 돌리고, 그 사이에 3조의 물결무늬(波狀文)을 시문하였다. 동체에는 3조의 파상문이 시문되어 있고 일부에 자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 굽다리는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122 짧은목항아리(短頸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90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구형(球形)의 동체(胴體)와 넓게 벌어진 짧은 목을 갖춘 항아리로 경질이며 회청색을 띠고 있다. 둥근 밑으로부터 벌어져 올라가 풍만한 동체(胴體)를 이루며 다시 오므라들어 목(頸部)를 형성하였다. 목(頸部)은 올라가면서 넓게 벌어지고 있으며 외측면(外側面) 상부(上部)와 하부(下部)에 각각 한 줄의 양각선대(陽刻線帶)가 둘러져 있다. 구연(口緣)이 약간씩 결실되었고 기면(器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기형(器形)이 약간 이그러져 있다.
121 짧은목항아리(短頸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89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회백의 경질토기이다. 구형(球形)의 동체(胴體)에 바닥은 평저(平底)에 가까운 원저(圓底)이며 구연부(口緣部)은 짧게 외반하였다. 동체 상부에서 저부(底部)까지 타날기법(打捺技法)에 돗자리무늬(格字文)가 시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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