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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80 토기항아리(土器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항아리(항아리)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7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구연(口緣)은 외반되어 벌어졌고 짧은 목에 동체(胴體) 상부(上部)에서 벌어지다 서서히 좁아져 세워진 긴 동체의 항아리이다. 회흑색의 경질토기로 기면(器面)에는 물레질한 흔적과 타날흔적이 드문드문 찍혀있다. 손가락으로 긁어 내린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79 굽다리잔(高杯)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제례(祭禮) 제기(祭器)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6 / 000
상세설명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잔은 회청색의 경질소성으로 전체적으로 자연유가 흡착되어 있다. 굽다리는 나팔형으로, 중간에 두 줄의 심선(深線)을 둘러 상(上), 하단(下段)으로 구획하고, 각각 네 개의 굽구멍을 엇갈리게 배치하였고, 굽 밑부분은 각지게 내경한다. 전체적으로 물레의 회전 자국이 남아 있다.
78 굽다리항아리(有臺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5 / 000
상세설명 [정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후기(後期)에 영남지역 전역에 걸쳐서 츨토되고 있는 '신식와질토기(新式瓦質土器)'의 표지적(標識的)인 기종(器種)으로, 받침(臺)이 부착(附着)되어 있으며, 아가리(口緣) 부분이 유난히 벌어져서 '대구광구호(臺附廣口壺)'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긴목항아리의 조형(祖形)으로는 원삼국시대 중기에 표지적으로 출토되는 '고식와질토기(古式瓦質土器)' 기종인 쇠뿔손잡이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가 점차 받침이 붙게 되거나 그릇받침(器臺)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예는 김해 대성동 유적 주변 제1지구 13호묘 출토품과 영남지방 출토로 전하는 호림박물관 수장품을 들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울산 하대 유적 출토품이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하대 43호묘와 44호 묘의 출토품을 들 수 있는데, 44호묘에서는 쇠뿔손잡이항아리와 동반출토되어 어느 정도 빠른 시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굽다리 입곧은항아리(臺附直口壺)와 동반출토된 예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굽다리목곧은항이로 교체되며서 소멸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전체적인 기형(器形)을 입술과 목부(口頸部), 몸체부(胴體部), 다리(臺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목부분은 약간 벌어지면서 올라오다가 입술끝(口緣端)에 이르러 급하게 밖으로 벌어지며, 몸체는 역삼각형(逆三角形)·장동형(長胴形)·편구형(扁球形)의 모양을 이루고 있고, 다리는 나팔상(喇叭狀)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형 뚜껑(蓋)와 세트를 이루며 출토되는 예가 많다. 이 굽다리긴목항아리는 낮은 굽다리를 가진 항아리(壺)로 기면(器面)은 회청색을 띠며 경질토기이다. 굽다리는 전체 크기에 비하여 낮은 편이고 8개의 굽구멍(透窓)을 뚫었다. 동체부(胴體部)는 둥글고 어깨부분에 1줄의 돌대(突帶)를 돌렸다. 구연(口緣)은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77 굽다리항아리(臺附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4 / 000
상세설명 [정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후기(後期)에 영남지역 전역에 걸쳐서 츨토되고 있는 '신식와질토기(新式瓦質土器)'의 표지적(標識的)인 기종(器種)으로, 받침(臺)이 부착(附着)되어 있으며, 아가리(口緣) 부분이 유난히 벌어져서 '대구광구호(臺附廣口壺)'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긴목항아리의 조형(祖形)으로는 원삼국시대 중기에 표지적으로 출토되는 '고식와질토기(古式瓦質土器)' 기종인 쇠뿔손잡이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가 점차 받침이 붙게 되거나 그릇받침(器臺)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예는 김해 대성동 유적 주변 제1지구 13호묘 출토품과 영남지방 출토로 전하는 호림박물관 수장품을 들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울산 하대 유적 출토품이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하대 43호묘와 44호 묘의 출토품을 들 수 있는데, 44호묘에서는 쇠뿔손잡이항아리와 동반출토되어 어느 정도 빠른 시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굽다리 입곧은항아리(臺附直口壺)와 동반출토된 예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굽다리목곧은항이로 교체되며서 소멸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전체적인 기형(器形)을 입술과 목부(口頸部), 몸체부(胴體部), 다리(臺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목부분은 약간 벌어지면서 올라오다가 입술끝(口緣端)에 이르러 급하게 밖으로 벌어지며, 몸체는 역삼각형(逆三角形)·장동형(長胴形)·편구형(扁球形)의 모양을 이루고 있고, 다리는 나팔상(喇叭狀)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형 뚜껑(蓋)와 세트를 이루며 출토되는 예가 많다. 이 굽다리항아리는 낮은 굽다리와 구형(球形)의 동체(胴體)가 붙어 있는 형태로 굽다리에는 8개의 굽구멍(透窓)이 뚫려 있다. 동체는 중앙에 1줄의 음각선(陰刻線)이 둘러져 있고 구연은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76 토기병(土器甁)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3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짙은 회청색의 경질소성으로 구연(口緣)은 나팔모양이다. 동체(胴體)는 구형(球形)에 가깝고, 바닥은 평저형식이다. 전체적으로 기면(器面) 일부가 산화되었고,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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