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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75 토기매병(土器梅甁)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2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약간 벌어져 세워진 구부와 짧은 목, 어깨로부터 벌어져 동체의 상부에 중심이 있고 서서히 좁아지다 다시 벌어져 세워진 매병(梅甁)이다. 목에 한 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돌렸으며 동체에는 물레의 회전 자국이 남아 있다. 표면(表面)은 회청색을 띠나 기면(器面) 일부가 변색(變色)되어 있다. 경질이며 바닥은 평저(平底)이다.
74 토기병(土器甁)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1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회청색의 경질소성으로 병형토기이다. 목은 짧고 구연부(口緣部)은 나팔모양이며 각을 이루고 있다. 동체(胴體)는 난형(卵形)에 가깝고 바닥은 평저형식이다. 전체적으로 기면(器面)이 거칠고 산화되었으며, 어깨부분(肩部)에 가는 음각선(陰刻線) 3줄이 희미하게 시문되어 있다.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73 토기병(土器甁)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10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회청색의 경질소성으로 병형토기이다. 구연(口緣)은 외반하다 각을 이루며 내경한다. 동체(胴體)는 반원형(半圓形)이고 바닥은 평저형식이나 고르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있고 기면이 거칠다.
72 토기그릇받침(土器器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09 / 000
상세설명 [정의]
한국 고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토기의 일종으로 바닥이 둥근 그릇인 항아리류를 받치기 위해 만든 것을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그릇 받침은 대략 밑이 둥근 항아리가 토기의 중요한 종류로 만들어지는 원삼국시대 초기부터 제작이 성행했을 가능성이 크나 실물로 확인되는 것은 드물다. 단지 해남(海南) 군곡리(郡谷里) 조개무지에서 똬리 모양의 그릇받침이 출토되었고 경산 임당 A-I-135호묘에서는 쇠뿔모양손잡이단지를 얹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와질토기로 제작된 다리와 그릇을 받치는 수부(首部)를 따로 제작하여 붙인 그릇받침이 발견되어 이 시기의 그릇받침 형태를 짐작하게 해 즐 뿐이다. 이 외 원삼국시대의 널무덤에서 출토되는 주머니단지를 고리모양의 다리(脚部)를 따로 제작하여 붙인 것들도 더러 출토되고 있어 앞으로 이 시기에 있어 다른 형태의 그릇받침들이 조사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원삼국시대 말기, 단단한 경질의 소위 도질토기가 발생하는 무렵부터는 납작토기가 주로 사용된 고구려지역을 제외한 백제, 신라, 가야 지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그릇받침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그릇받침은 요즘의 화로와 비슷한 모양의 화로모양그릇받침(爐形器臺), 굽다리접시를 크게 확대한 모양의 바리모양그릇받침(鉢形器臺), 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원통모양그릇받침(筒形器臺), 둥근 고리 모양의 고리모양그릇받침(環形器臺)으로 나누어지며, 원통모양그릇받침은 대형, 중형, 소형으로 구분된다. 화로모양그릇받침은 그릇을 받치는 수부(首部)와 다리(脚部)로 구성된 것으로 원삼국시대 후기 덧널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 입이 넓게 벌어지는 화로모양토기를 본받아 제작된 것이다. 바리모양그릇받침 역시 수부와 다리로 구성되었는데, 화로모양그릇받침보다는 약간 늦게 이를 이어 받아 제작되어 삼국시대 전(全)기간 동안 백제, 신라, 가야영역에서 유행한 것이다. 원통모양그릇받침은 수부, 몸통, 다리로 구성되었고 몸통의 위에 공모양의 돌출부를 두어 수부와 몸체의 상부를 합해 보면 입넓은 항아리 모양을 한 것이다. 고리모양그릇받침은 소형의 원통모양그릇받침과 같이 영남지방에서 출현하여 나중에는 대가야영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만 특히 유행한 것이다. 그릇받침 가운데 화로모양과 바리모양의 경우 넓고 깊은 수부를 가지고 있어 일반용기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나 원통모양과 고리모양은 그릇을 받치는 용도 이외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이 그릇받침은 경질소성의 적갈색을 띠는 소형 그릇받침으로 둥근 바닥의 그릇을 받치는데 사용하였던 원통형 그릇받침의 축소형이다. 수부(首部)와 통부(筒部), 각부(脚部)로 나누어져 있으며, 수부는 약간 바라졌고 통부는 직선상으로 내려오다 끝부분에서 나팔상으로 벌어져 각부에 이른다. 이 유물은 포항 옥성리 고분(17호분)에서 출토된 소형 기대와는 기형적으로 비슷하나 삼각형의 투공(透孔)이 뚫려 있지 않는 형식이다.
71 인화문병(印花文甁)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108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경질의 토기병으로 회색을 띠고 있다. 동체(胴體)는 구형(球形)을 이루고 어깨부위에 2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둘러 어깨에는 초엽문(草葉文)을, 어깨에는 점열선문(點列線文)을 압인(押印)하였고, 굽은 1줄의 음각선대(陰刻線帶)를 돌렸다. 구연(口緣)은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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