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이미지 |
유물명 |
국적/시대 |
재질 |
상세보기 |
2665 |
|
그물추 |
한국(韓國)
|
석(石)
|
|
용도기능 |
산업/생업(産業/生業) 어업(漁業) 어로(漁撈) 어망추(漁網錘) |
장르 |
기타(其他) 기타(其他) |
유물번호 |
000006 / 000 |
상세설명 |
[정의]
그물에 매달아서 그물이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어로 도구.
[발달과정/역사]
원시 및 고대사회에서 사용되었던 그물의 존재는 부자(浮子), 망(網), 침자(沈子) 가운데 침자인 그물추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지만, 부자와 그물은 유기물로 만들어졌기 한국과 같은 산성토양에서는 남아 있기 어렵다. 다만 그물의 경우는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알려주고 있는데 예를 들면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에 그물의 눌린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토기로 보아 그 해당시기는 신석기시대 전기이며 그물눈(편목)은 6㎝미만이다. 그물추에서 신석시대에 유구석추(有溝石錘), 토기편추(土器片錘), 절목석추(切目石錘), 양자강형토추(楊子江形土錘) 등이 출토되며 청동기시대에는 유구석·토추(有溝石·土錘), 토기편추, 절목석추, 관상토추(管狀土錘), 원판형 토추(圓板形土錘) 등이 나온다. 철기시대에는 유구토추, 절목석추, 관상토추 3종이 있다. 그밖에 유공석추(有孔石錘), 납작한 자갈의 양끝을 떼어낸 역석추(礫石錘) 등이 있으며 이들 그물추의 생김새는 그 이후 삼국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간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신석시시대의 그물추 가운데 유구석추는 한반도 동북지방의 해안에서 등장하여 청동기시대까지 사용된다. 한편 유구석추는 원삼국시대에 동북지방과 연해주에서 나오고 있다. 토기편추는 동북지방과 서북지방에 집중하여 분포되며 남부지방에서는 봉계리 유적에서만 출토된 바 있다. 토기편추는 청동시대가 되면 대동강유역이나 서울의 한강유역까지 그 분포범위가 확대된다. 이 무렵에는 재질의 변화가 일어나 서북지방에서는 절목석추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동강유역에서 남하하여 남한강의 상류에서도 출현하고 있다. 한편 한강유역에서는 토기편추가 유구토추와 원판형토추의 사용으로 흐름이 바뀌는데 유구토추는 남부지방의 서부지역까지, 원판형토추는 남부지방 동북내륙지방까지 연결된다. 시기적으로는 남부지방 서부지역까지 내려온 유구토추는 철기시대까지 계속되지만 원판형토추는 청동기시대에 소멸되고 만다. 이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모습의 관상토추가 서북지방에 등장하는데 이것은 중국 동북지방의 것과 관련 있다고 보인다. 관상토추는 한반도 동해안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발견된다. 삼국시대에는 관상토추가 그물추로 정형화하여 합천 저포리 B지구 고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껴묻거리(副葬品)로도 매납된다. 관상토추의 급격한 보급은 제작의 편리함에 있었다고 추측된다. 관상토추는 가는 줄기에 그물의 용도에 맞추어 점토을 적당한 크기로 쥐어놓고 이것을 응달에서 말린 다음 구움으로서 한 번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한 번씩 쥐었던 흔적은 미사리 유적에서 출토된 관상토추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므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경향과는 별도로 제주도에서는 유공석추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물론 유공석추의 뒤를 잇는 것은 관상토추이다. 이 그물추는 석재를 이용하여 제작한 그물추이다. 양쪽 가장자리 부분에 타격을 가하여 홈을 내었다. |
|
2664 |
|
파수부편 |
한국(韓國)
|
토제(土製) 연질(軟質) |
|
용도기능 |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
장르 |
기타(其他) 기타(其他) |
유물번호 |
000005 / 000 |
상세설명 |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워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연질소성의 무문토기 파수부편(把手部片)이다. 색조는 황갈색(黃褐色)을 띠며, 단면은 타원형에 가까운 원추형(圓錐形)이다. 파수를 별도로 제작하여 기벽에 부착시킨 흔적이 손누름자국과 잔존한다. 파수 상면(上面)의 중앙에 길이 1.1㎝의 구멍이 나있으나 관통(貫通)하지는 않는다. 바탕흙은 정선된 점토질에 소량의 세사립을 함유하였으며, 미세한 석영과 운모를 보강제로 사용하였다. 소성은 양호한 편이다.
|
|
2663 |
|
고배 저부편 |
한국(韓國)
|
토제(土製) 경질(硬質) |
|
용도기능 |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
장르 |
기타(其他) 기타(其他) |
유물번호 |
000004 / 000 |
상세설명 |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회청색의 단각고배(短脚高杯) 저부편(底部片)이다. 단각(脚部) 일부(一部)와 배신부(杯身部)는 결실되었다. 굵은 사립이 함유된 점토질의 바탕흙을 사용하였으며, 高化度의 경질소성이다. 각부의 단은 사선으로 접지면과 닿는다. 각부의 내면에 물손질한 흔적이 있다.
|
|
2662 |
|
파수부편 |
한국(韓國)
|
토제(土製) 연질(軟質) |
|
용도기능 |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
장르 |
기타(其他) 기타(其他) |
유물번호 |
000003 / 000 |
상세설명 |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워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연질 무문토기의 우각형파수부편(牛角形把手部片)으로 색조는 황갈색(黃褐色)을 띤다. 상부(上部)에는 끝이 뾰족하고 길죽한 타원형의 도구를 이용하여 길이 3.3㎝, 폭 0.5㎝의 구멍을 깊게 찔러 관통(貫通)시켰다. 바탕흙은 정선된 점토질에 비교적 굵은 석립을 함유하였으며, 소량의 석영을 보강제로 사용하였다. 소성은 양호한 편이다.
|
|
2661 |
|
파수부편 |
한국(韓國)
|
토제(土製) 연질(軟質) |
|
용도기능 |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
장르 |
기타(其他) 기타(其他) |
유물번호 |
000002 / 000 |
상세설명 |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워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외에도 그릇받침(器臺), 손잡이달린잔(把手附盞), 동물·배·뿔 모양의 토기들도 있다. 이 토기는 연질소성의 무문토기 파수부편(把手部片)이다. 색조는 황갈색(黃褐色)을 띠며, 단면은 타원형에 가깝다. 잔존하는 기형으로보아 파수(把手)는 봉상(棒狀)이다. 파수를 별도로 제작하여 기벽에 부착시킨 흔적이 손누름자국과 잔존한다. 파수 중앙에 길이 2.0㎝, 폭 0.2∼0.8㎝의구멍이 2/3정도 나있다. 바탕흙은 정선된 점토질에 세사립을 함유, 미세한 석영과 운모를 보강제로 사용. 소성은 양호한 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