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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이미지 유물명 국적/시대 재질 상세보기
2635 청자대접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24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모양을 만들고, 철분이 소량 함유된 장석질의 유약(靑磁釉)을 입혀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장 고려적인 특징을 보이는 형태이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대접은 구연부분과 몸통부분이 대부분 결실되었다. 대부분 탈색되었으나 녹청색의 색조를 띤다. 굽접지면에 눈비짐받침이 4개가 보이며 내저원각이 굽지름보다 작다.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2634 청자대접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23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모양을 만들고, 철분이 소량 함유된 장석질의 유약(靑磁釉)을 입혀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장 고려적인 특징을 보이는 형태이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대접은 회청색의 대접편으로 몸통부분과 구연부 대부분이 결실되었다. 내저원각이 굽지름크기로 있으며 내면 바닥에 굵은 소토들이 조금 붙어있다. 굽접지면에는 눈비짐받침이 4개가 보인다. 태토는 정선되었다.
2633 청자대접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대접(대접)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22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모양을 만들고, 철분이 소량 함유된 장석질의 유약(靑磁釉)을 입혀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장 고려적인 특징을 보이는 형태이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대접은 담청색의 대접으로 구연부분과 몸통부분이 일부 결실되었다. 내저원각이 굽지름보다 작게 형성되어 있으며 굽에서 1.0㎝정도까지는 유약기 시유되어 있지 않다. 구연부 바로밑에 1조의 심선이 가고 있다.
2632 청자병편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병(甁)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병(甁)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021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모양을 만들고, 철분이 소량 함유된 장석질의 유약(靑磁釉)을 입혀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장 고려적인 특징을 보이는 형태이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병은 구연부분은 결실되었으며 타원형의 형태로 바닥이 고르지 못하여 서지 못한다. 외측면은 타날의 흔적이 부분부분 선명하게 보이며 내측면은 넓고 투박하게 선이 있다.
2631 가락바퀴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염직(染織) 방추차(방추차)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020 / 000
상세설명 [정의]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방적구의 일종.
[발달과정/역사]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드는 방적기구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황해도 지탑리(智塔里), 강원도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 흔암리(欣巖里) 등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바늘이 실에 감긴 채 출토된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BC 5세기∼AD 6세기부터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동기시대 이후의 것은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은 방차를 써서 삼[麻]과 같은 식물섬유를 뽑아 평직물을 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드는 방적기구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선사시대의 가락바퀴는 원반모양, 팽이모양, 주판알모양, 공모양 등이 있다. 가락바퀴의 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이 구멍에 가락바퀴의 축이 될 막대를 넣고 그 축을 돌리는 방법으로 실을 고아서 뽑는데 사용한다. 재질로 보면 흙을 빚어서 구운 것, 돌로 만든 것, 또는 질그릇 조각을 갈아서 만든 것 등이 있는데 선사시대에는 주로 흙을 빚어서 구운 것이 많다. 이 가락바퀴는 약간의 각을 둔 원형의 형태로 가는 모래가 다량 혼입되어 있다. 연한 황색 태토의 연질로 두께가 1.1-1.2㎝로 일정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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